● 고선교사의 큐티 클리닉 1812


mission,


은혜의 자급자족을 위한 미니멀리즘


프랑스 개신교 공동체 미션 디모데


고직한 선교사 

Young2080 상임대표

young2080@gmail.com





지난 8월 중순에 열흘 정도 프랑스를 다녀왔다. 최근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한 공동체를탐방하러 간 건데, 유명한 떼제 공동체가 아니라 젊은이들을 위한 건강한 공동체와 건강한 교회 세우기 관점에서 새로운 롤모델이 될 만한 〈미션 디모데 Mission Timothee)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귀하고 훌륭한 네 분과 동행했는데, 특별히 미션 디모데를 십여 차례 방문하고 우리를 인도한 방선기 목사는 수년 전부터 내게 프랑스 같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가톨릭이 강한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많고, 그 중에서도 남성들이 많다는 미션 디모데가 갖고 있는 특이한 매력을 자주 말해 와서 가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했다.



가장 초대교회에 가까운 교회


이 미션 디모데는 48년 전에 개신교 청년 몇이 노숙자나 알코올 중독자 등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사랑과 성경으로 돕는 캠프로 시작됐다. 이 캠프를 통해 젊은이들 의 변화가 많이 일어났고, '망가진 인생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주 독특한 형태의 교회로 자랐다. 프랑스 전역에 30-50명이 모이는 공동체 30여 개와 2백 명 가량의 공동체 두세 개로 존재하면서 헌금은 중앙으로 집결되고 인사권과 재정권이 중앙에 주어졌다. 교단으로 보기도 애매한데, 굳이 그 정체성을 정의한다면 30여 개의 멀티 캠퍼스형 공동체들이 있는 하나의 교회이고, 그 수도 약 2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중앙에선 각 공동체에서 들어온 헌금으로 풀타임 사역자들을 세웠는데, 그들의 사례비는 프랑스의 최저임금 수준이어서 한국적 대형교회들이 갖기 쉬운 재정 문제는 전혀 없어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프랑스 종교개혁의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칼빈의 후손들로 가톨릭 사제들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엄청나게 핍박 받은 위그노들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네덜란드의 무역업과 스위스의 ‘비밀주의' 금융업과 미국에서 꽃 피운 자본주의 정신 등에 커다란 문명사적 영향을 끼쳤다. 바로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알린 사람과 책이 막스 베버이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프로테스탄트 여러 지파들 중에서 칼비니스트 위그노들의 영향은 단연 컸는데, 이런 위그노 후예들의 미션 디모데는 내가 지금까 지 본 교회들 가운데 가장 초대교회에 가까운 교회였다.


이들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성장의 비밀은 역시 성경적인 복음이고,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확실한 주되심(Lordship)을 공동체적 생태계 속에서 가르쳐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2, 30대의 자원하지만 선별된 청년들이 포르마씨옹 (Formation)' 이란 공동체에서 무려 3년 동안 성경과 신학을 배우고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훈련 과정이었다. 그 훈련된 자들이 30여 공동체의 목회자로 또는 목회팀에 속해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다른 직업을 가진 이중직 사역자들이었다.


내가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교회를 통한 그들의 신앙생활의 미니멀리즘이다. 복잡 하지 않았고 산만하지 않았으며 다양하지도 않았다. 아주 심플했다. 매주 성경을 잘 가르치는 한두 번 정도의 예배와 예배 후 식사 전후로 갖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의 밥상공동체 생활, 그리고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주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책읽기가 전부였다.



당신의 미니멀 라이프는 지속가능한가 

스티브 잡스 같은 거부가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또 현대 문명의 아이콘이고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르 코르뷔지에 같은 사람이 4평 정도의 오두막집에 살며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의 본질 에 집중하는 것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비중심화시키고 쳐내서 마지막으로 남는 본질 중의 본질 속에 푸욱 빠져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당신에겐 과연 무엇이 본질인가? 그 말씀으로 큐티맨의 존재와 근거와 목표와 동력과 쾌락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쳐내고 무엇을 비중심화시켜야 할까? 지금 당신의 미니멀리즘은 안녕하신가? 당신의 미니 멀라이프는 지속가능하신가?




Posted by 고직한
큐티세미나 2강  큐티체조 전반부

고직한의 큐티 세미나 강의입니다. 

큐티체조는
- 위로 하나님,
- 아래로 인간
- 물어봐
- 느껴봐
- 옆으로 실천해

5부분으로 진행됩니다.
그중 후반부인
물어봐, 느껴봐, 옆으로 실천해 에 대한 내용입니다.


1큐티 강의는 총 15편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큐티 세미나 5편

- 큐티 클리닉 5편

- 큐티 다이나믹스 5편 

좋아요와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









Posted by 고직한
큐티클리닉/QTzine2018. 11. 20. 12:12

#큐티진 #QTzine #12월호큐티



큐티진 11월호 본문은 다니엘 & 팔복 입니다. 

다니엘과 함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팔복을 통해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묵상하는

시간이 되어보시죠?

이 겨울에 큐티하는 즐거움을 누려보세요.


구독문의는 031-426-2144



Posted by 고직한
큐티세미나 2강  큐티체조 전반부

고직한의 큐티 세미나 강의입니다. 

큐티체조는
- 위로 하나님,
- 아래로 인간
- 물어봐
- 느껴봐
- 옆으로 실천해
5부분으로 진행됩니다.
그중 전반부인
위로 하나님, 아래로 인간 에 대한 내용입니다.


1큐티 강의는 총 15편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큐티 세미나 5편

- 큐티 클리닉 5편

- 큐티 다이나믹스 5편 

좋아요와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






Posted by 고직한


빌1:12-30

 

도전:바울이 투옥 중에도 기뻐하며 살 수 있었던 이유와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상황:바울은 오직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다면 그 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면 그것을 기뻐하였다. 또한 바울이 섬기는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한 길을 갔다. 바울의 이러한 가치관의 핵심기둥듣로 인해서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근래 83세 노모의 부상과 대수술과 입원 중 새로히 예측되는 대장암의 가능성 때문에 무척 우울하였다. 그리고 다른 몇가지 상황들은 내가 더욱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내 삶과 사역이 무척 버겁게 느껴지고 있다.  이러한 때 내가 바울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그 가치관이 어떠한 변화를 주는 것일까? 평생 투철한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해서 살아오시고 젊은 시절 버트란트 러셀의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고 불가지론자의 길을 택하며 오신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복음을 향해 마음을 여시고 신앙고백도 하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좀 더 복음의 깊이와 능력을 좀 더 맛보게 하고 싶었으나 사실 기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어머님의 현재 입원 상황은 어머니에게 복음 전파하기에 그리고 어머님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아주 좋은 기회인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침울해질 이유가 어디 있는 것일까?  또한 우울해질 상황에서 오히려 이런 열린 기회로 인해 기뻐함으로써 특별히 어머님과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볼 때에 그리스도를 더욱 존귀케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해야할 길이 아닐까?

 

변화:어머님의 입원 중 상황을 바울의 가치관적 관점에서 바라보자.

 

→: 아무리 바빠도 어머님께 좀 더 자주 가서 어머님을 위로해드리며 말씀도 나누고 기도도 많이 해드리자.

 

Posted by 고직한


빌1:1-11

 

도전: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의 애정은 마게도냐 환상으로 인해 빌립보로 가게되어서 개척된 교회라는 점과 옥중에서 낳은 성도들이 있었다는 상황과 반드시 연결되어 생각되어야 한다. 

 

상황:빌립보교회는 그야말로 100%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진 교회이다. 원래 아시아 지역을 향하려던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선 내려놓게 하셨고 바울의 선교팀을 마게도냐 환상을 통해 급전환시켜 빌립보로 가게 하셨다. 거기서 만나게된 기도하는 루디아와 그 일행등을 만나 교회가 이루어졌다. 바울은 그야말로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느꼈을 것이고 이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그런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신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늘미 맺어준 관계라는 생각이 깊었을 것이고 루디아와 같이 비지네스 우먼 및 함께하는 여성들은 바울에게 좀 더 감성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 후 빌립보의 감옥에 갇히는 일, 거기서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서 간수장과 가족의 개종과 성령의 기름부으시는 오순절적 사건 등 빌리보교회의 또 한 축을 이루게되는 사람들과는 특이한 인연으로(옥중에서 낳은 교회) 사역을 하게된 것이다. 이런 빌립보교회의 개척사를 보면 바울과 그 핵심멤버들의 관계는 아주 절친한 관계였을 것이다. 사실 이런 개척과정에 형성된 소중한 관계들! 바울은 이들을 무척 사랑하였고 이들을 위해 깊은 중보의 시간들을 가졌으며 이들에게 서신을 띠웠다.

 

변화:나의 중보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나의 관심과 사랑은 어느 정도인가?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어떻게 하며 어떤 A.S.를 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좀 더 나의 중보리스트를 업데이트시키고 바울과 같은 마음과 태도, 그리고 구체적인 A.S.컨텐츠를 갖고 그들을 향해 수평적인 목회를 하자.  

Posted by 고직한


롬16:21-27

 

도전: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고자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신비로 복음을 감춰두신 이유

 

상황: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다. 왜 하나님은 신비 속에 그렇게 하신 것일까? 또한 아주 장기간 감춰두고 계시다가 이젠 완전히 공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관되게 비전의 비밀 메시지로 극소수의 사람들만 듣고 구원받게 하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27절 초두에서처럼 '지혜로우신 하나님'이란 말에서 그 답을 헤아려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의 지혜! 나도 누구도 미칠 수 없는 지혜이다. 그 지혜 속에 하나님께선 그렇게 하셨다. 조금이라도 헤아려보면 얼핏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두신 하나님께서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성품과 방식에 맞게 구원하시기 위한 완벽한 수단이 그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의 세상에서도 복음은 불신자들에겐 거의 신비 속에 감춰진 보물이다. 이미 복음이 웬만한 곳이면 다 공개되었으나 다 그 복음을 알아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마치 열린 것과 같다. 이 신비의 계시가 내게 허락된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 복음은 정말 신비롭게 나에게 도달되었고 하나님은 내 눈의 베일을 거두시고 그 비밀을 알게 하셨다.  

 

변화:신비의 계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감사가 내게서 흘러넘쳐 나 또한 누군가 그 계시를 접해 구원에 이르게되는 자들이 나오게 하자.

 

→: 아뜰리쉬의 교사 중 불신자 등 내 주변에 불신자들에게 이 신비의 계시를 알려줄 수 있는 관계와 기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맺자. 아뜰리쉬 교사들과 특별히 월 1회 스낵파티를 갖자! 

Posted by 고직한


롬16:1-16

 

도전:바울은 한 교회에서 장기적으로 하는 수직적인 목회가 아니라 순회하는 선교사로서  수평적인 목회를 하였다.

 

상황: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사람들의 이름만 적어도 30여명. 그리고 그들 하나 하나에 대한 묘사는 바울과 그들과의 깊은 신뢰 관계와 친밀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바울은 로마에 있지 않으면서 서신으로서 중보기도로서 또는 뵈뵈와 같이 사람을 보내기도 함으로써 로마교회의 중요 성도들을 대상으로 수평적인 목회를 한 셈이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나의 중요한 롤모델이다. 나는 이른바 한 곳에서 장기목회를 하는 담임목회자가 아니다. 나는 대학졸업 후 35년 간 젊은이사역만 하였다. 젊은이 사역의 특징은 2-3년이란 단기간에 젊은이들에게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고 그들은 모두는 어디론가 흩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청년목회자들을 오래 동안 도와 왔다. 그들 역시 부교역자 신세인지라 어디론가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바울을 보면서 흩어진 젊은이들과 청년목회자들을 상대로 나도 애정을 갖고 중보로써 서신과 같은 수단으로써 수평적인 목회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소위 내 교회 교인이 아니면 내 마음과 내 기도의 리스트에서 이름을 지워버리는 식으로 해선 안된다.   

 

변화:수평적인 목회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목회지원 시스템은 어떻게 할 것인지 보다 더 깊은 연구와 점진적인 실천.

 

→: 지금하고 있는 나의 사역 모두를 수평적인 목회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수평적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목회 대상으로 간주하며 애정과 중보를 심어야 한다.

 

Posted by 고직한


막14:33-39

 

도전:예수님 안에도 아버지의 원에 반하는 다른 원이 있었다. 그래서 지와 정의 표현은 그 예수님의 원을 따른 것이었으나 의지적 선택은 아버지의 원함 쪽이었다.  이것이 베드로와 다른 점이었다. 

 

상황:예수님의 마음에도 예수님의 원함과 하나님 아버지의 원함의 두 마음이 존재했다.(36절) 그리고 베드로의 마음에도 두 마음이 존재했다. 베드로의 마음의 원함과 육신의 원함. (38절) 베드로는 육신의 원함에 결국 져서 아주 중요한 순간에도 깨어있지 못하고 잠을 자는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원함과 다른 예수님의  원함에는 죄가 없었다. 예수님의 원함과 아버지의 원함은 분명 달랐지만 예수님의 원함은 그야말로 사고와 정서 작용의 원함이었고 의지적 작용까지는 안갔다. 예수님에게 더 강한 아버지의 원함에 순종하려는 열망과 의지가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죄인인 인간들, 아무리 거듭났다 하여도 아직 육체에 죄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버지의 원함에 위배되는 어떤 자신의 원함이 사고와 정서 작용에까지 나타났으면 분명 그것은 의지적 작용까지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다. 여기서 예수님의 또 다른 면을 추정하게 된다. 최서형박사의 통전적 생명관에 의하면 인간의 육신은 단지 하드웨워만이 아니라 besouled body로서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하드웨어인 셈이다. 각 오장육부라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가 달려있는데 그 소프트웨워가 죄인이 된 이후 죄성이 가득한 소프트웨어로 코드화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정의적 존재로서 지적, 정서적 차원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면 거의 자동으로 의지적 작용이 일어나서 육신에 코드화되어 있는 방향으로 행동이 나타난다. 또는 베드로처럼 마음에는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육신의 코드화되어 있는 것이 더 강해 그 깨어있어야할 중요한 순간에 자고 있는 것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육신은 분명 일반 죄인의 육신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마리아 안에서 성령으로 일태된 예수님의 육신은 그 오장육부 안에 내장된 소프트웨어에 죄성이 깃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지적,정서적 작용까지는 예수님의 원함이 강했으나 의지적으로 아버지의 원을 붇잡았고 그의 육신은 그 의지적 원을이 행동화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러면 유혹과 위기의 순간에, 절대절명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내 뜻과 내 원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한 나의 준비는 무엇이어야 할까?

 

변화:내 안에 하나님의 원함과 나의 원함이 대립될 때, 나는 하나님의 원함을 선택하는 훈련들을 자잘한 영역에서부터 큰 영역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행하고 평가를 해보와야 한다. 그러내 육신 오장육부 속에 코드화되어 있는 것들을 성령화하고 말씀으로 육화하는 inward journey training을 보다 더 열심히 많은 시간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한다. 이 훈련이 누적되어 있을 때 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선택은 내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 하나님의 임재 속에 나홀로 있는 시간(solitude)을 가능한대로 최대한 많이 만들자. 그리고 임재적 묵상 및 사도적 기도 등의 inward journey time을 많이 갖자! 아내와 함께 기도하러 아뜰리쉬 다락방에 오늘 저녁도 가자.

Posted by 고직한


롬15:22-33

 

도전:서바나 선교를 위한 바울의 fund raising 전략의 핵심은 friend raising과 prayer raising이다.

 

상황:바울의 이방인 선교의 골은 서바나 선교이었다. 그러면서 바울은 가는 길에 예루살렘을 거처 로마로 간다.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가 자신의 서바나 선교비전에 공감하고 파송해주길 바라면서 그가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로마교회에 불후의 명저가 될 '로마서'라는 대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나눠주고자 간다고 하였고, 그들과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누리고 기쁨을 나누고자  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함께 기도하고 기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마게도냐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것을 하나의 롤모델 케이스로 알려주었다. 이 때 자연스레 영적인 것들을 얻게된 자들이 이타적인 사랑으로 육적인 것들을 나누는 것의 필요성을 교육하였다. 나는 다시 한번 순수하고 진정한 성경적 코이노니아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의 삶과 사역의 동기는 누가봐도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30절)이었다.  

나와 같은 오랜 사역자들의 문제는 mission이 너무 앞서는 것이다. 코이노니아가 충분치 않으면서도 미션을 강조한다. 코이노니아 없는 미션은 일종의 비지네스이다. 미션을 위한 펀드레이징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물질을 기꺼히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펀드레이징의 기초는 friend raising이다. 그리고 friend raising의 기본과 동력은 prayer raising이다.

 

변화:근래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여러 축복된 관계들을 맺으며  보다 더 순수한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을 깊이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안용운목사님처럼 핸드폰 문자로 좀 더 깊이 지인들과 삶과 사역을 코이노니아 차원에서 나누자.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