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6:12-13, 마14:23, 요6:15

 

요6:15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도전: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민심과 천심(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다. 

 

상황:민심이 천심이라 했던가? 아마 적잖은 경우 그럴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이고 이것이 그런대로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다. 따라서 민심을 거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민심이 천심과 다를 수도 있다. 오히려 천심을 거스리는 것이 민심일 경우도 적잖다. 이 점에 있어 안철수와 예수님은 역시 다르다. 감히 안철수 정도를 예수님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적인 것일 수 있으나 비교해 보면 안철수는 지금 여론과 인기와 상황와 백성들의 요구에 밀려 자신을 향한 오리지널 소명과 비전이 대통령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의 뚝이 무너지는 마당에 안철수가 IT 사업가로 교수로서의 사명에만 충실하여 시대의 요구와 정신을 외면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만약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고 그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으면 바라고 기도하는 나로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안철수가 자신을 향한 원 부르심을 접어두고 민심을 따르면 그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되고나면 "거봐라 안철수를 향한 민심이 천심이 아니었겠는가?!"로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여기엔 아주 중요한 그러나 결코  옳다고 볼 수 없는 전제점이 깔려 있다. 대통령되는 것이 기업가나 교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라는 전제점이다. 그러나 난 여기 동의할 수 없다. 안철수가 기업가로서 교수로서 원부르심에 맞지않는 대통령직보다 더 훌륭한 삶과 역할을 못할 것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엔 얼마든지 묵묵히 자신의 길을 향한 천직적인 소명을 갖고 살면서 일개 대통령보다 더 천심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안철수는 설령 대통령이 되어도 그것은 그가 더 훌륭한 기업가나 교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난 안철수가 예수의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본다. 물론 그가 크리스찬도 아닌데 예수의 길을 기대나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는 그저 한낱 한 때 인기몰이를 하는 인물 정도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도 예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비추어 내가 사고해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긴 안철수를 이런 관점에서 말하면 "그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라는 말이냐?"고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안철수를 논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안철수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할

     지 그 근본적인 속성과 원리를 말하는 것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찍고 안찍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변화:민심과 상황에 의해서 보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자!

→: 나를 향해 KSM형제가 요구하고 도전한 길보다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더 그 뜻을 살피며 나의 원부르심에 맞는 길을

       가자. 그 길이 인기있는 길이 아니고 돈버는 길이 아니어도! 또한 내 노후를 보장해주는 길이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가장 기뻐하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는 묵묵히 나가야 한다.

 

 

Posted by 고직한

하림이가 9곡을 작곡해서 피아노 반주로 녹음한 것을 들려주었다. 내심 놀랐다. 뭔가 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중 하림이가 내가 일독을 권한 '예수기도'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만든 떼제 음악 스타일의 '예수기도노래'가 내겐 가장 좋다. 뭔가 기도회 때 이 노내를 부르면 성도들이 예수님과의 인카운터를 경험할 것 같다. 물론 좋은 편곡자를 구해 완성도가 더 높아지면 좋겠다. 김영표목사가 프로듀서가 되어 주겠다했고 드러머 하림이와 함께 하림이가 작곡한 것을 가지고 밴드팀 구성과 녹음까지 해주겠다니 정말  감사하다. 12월 20일 목요일 저녁에 청담동 '그 안에 스케치북'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는 분들을 초청해 하우스컨서트를 열어야겠다. 하림이가 건강해서 이 과정을 잘 이겨내면 좋겠다.   

Posted by 고직한


롬13:1-7

 

도전:불편한 명령-진노 때문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상황: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언론사의 기자와 논설위원 생활을 하신 아버지는 거의 가정을 모르고 사셨고 마침내 정치하시다가 사상범으로(혁신계라는 낙인이 찍혀) 감옥에 가셨다. 무려 5년 정도 계셨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엔 조용한 곳에서 글쓰시고 사업하시느랴 역시 집을 돌보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나는 고등학교 들어가기까지 아버지가 살아 계셔도 사실상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 살아 온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부턴 어떤 일의 계기로 아버지와 아주 가깝게 보내는 기간이 적어도 내가 결혼하기까지는 이어졌지만.

그러다보니 난 윗 권위와 상대하는 법을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내온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갈등은 특별히 윗사람 남자들하고 있었다. 이 점에 있어 나는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해서 뭔가 저항감이 있었고 반골적 기질이 작동했다. 이런 나에게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은 사실상 꼴통이 되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인생 살아보면 역시 '상사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이 있다.그러나 이런 기술적 차원 보다는 양심에 입각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 정말 마음이 불편해진다.

 

변화:내 마음에 불편이 있어도 위에 있는 권위를 존경하고  복종하자. 물론 하나님나라의 관점과 가치 속에서 짠 맛 잃은 소금처럼 순증주의자가 되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개혁적 변혁적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윗 권위를 존경하고 복종하는 자가 되자.

 

→: 윗 권위에 대한 신앙적이고 양심적인 복종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