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7:11-26

11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14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120711 축복과 저주와 관련해서 어떤 프레임을 갖고 사는가? (신27:11-26)

도전: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슨 일을 내가 하든 ‘오직 축복’의 프레임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말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말하게하는 신명기적 ‘축복/저주’ 프레임 속에 놓여 있다.

 

상황: 내가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킴으로써 입증하는 삶을 산다면 나에게는 당연히 축복/저주의 구도 속에서 축복의 불이 켜지는 삶을 살 것이다. 반면에 내가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행위를 한다면 나에겐 저주의 불이 켜질 수 밖에 없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오직 저주’의 프레임 속에 있다가 ‘축복/저주’의 프레임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절대 착각 속에 빠지지 말아야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오직 축복’의 프레임 속에 빠지는 듯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에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면 법적인 면에서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기는 것은 맞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되면 법적인 측면 외에 하나님과의 교제적 측면도 열리게되는데 나의 하나님의 뜻 준수 여부에 따라 이 교제적인 면에서 ‘축복과 저주’의 코드가 작동하는 것이다. 즉 내가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축복의 불이 더 환하게 비춰지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슬프게하고 아프게 하면 저주의 불이 켜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행위가 구원받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한 얘기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삶으로써 나타난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서 아주 혐오하시는 죄악에 빠지게되면 그의 구원의 측면은 살아 있으나 실제 하나님과의 관계는 악화될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는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래야 회개할 것이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복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런 점에서 나는 어떤 상황 속에 있는가? 이 ‘축복/저주’의 프레임 속에 있다는 인식 속에서 나는 성화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답보 상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법도를 떠날 때가 많아서 오히려 퇴보 속에 있는가? 물론 누구나 엎치락 뒤치락은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적 방향이 어떠한가?

 

변화: 주님, 제가 무엇을 하든 ‘오직 축복’의 프레임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복음주의의 잘못된 경향성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특별히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 안에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를 자극하는 죄성과 죄행이 적지않게 있나이다. 내 오장육부의 내장 속에 따개비처럼 붙어 있는 코드화되어 있는 악한 것들을 봅니다. 그래서 나의 뇌세포 속에 오염되어 있는 사고작용을 느낍니다. 하나님, 이 시간 그런 것들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나의 생각과 삶에 저주스러운 것들이 떠나가게 하소서! 회개하오니 하나님의 성령을 깊이 깊이 부어주소서! 뼈속 깊이 스며들게 하소서!

 

포인트:축복과 저주와 관련해서 어떤 프레임을 갖고 사는가?

 

Posted by 고직한

신명기 27:1-10

1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9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도전:하나님 여호와 앞에 즐거워하라(7절)는 하나님의 명령.

 

상황:즐거울만한 것이 있어서 즐거워지는 것인가 아니면 즐겁지 않아도 즐거우려고 하면 즐거울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셨으니 후자가 맞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것을 신약적으로 보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도를 새기고 주의 보혈로 씻은 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나의 어떤 컨디션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하나님의 법도를 심비에 새기고 죄씻음 받으면 다 되는 것인가? 그렇게해도 내 아들의 질병은 그대로 있을 수 있고 나의 잘못과 관계없이 갚아야할 빚을 짊어지게 되었다면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는가? 그럴 경우라도 내 마음 속에  우울해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즐거워하라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즐거워하는 것도 명령을 하셨다면 즐거움은 내 상황의 여부가 아니라 내 마음의 선택 여부에 달려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뇌과학을 통해서 왜 하나님께서 쉬지말고 기도하라든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셨는지 과학으로 그 설명이 가능해졌듯이 하나님의 절대명령에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변화:이 시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주신 은혜와 긍휼을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 즐거워할 것을 내가 선택합니다. 하림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 내 마음 우울 하지만 , 하나님 당신을  찬양하며 내가 누릴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을 것을 선포합니다.

 

포인트:즐거움의 향유는 상황이 아닌 나의 선택!

Posted by 고직한

신명기 26:16-19

16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18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도전:나의 확언과 하나님의 확언이 만날 때,나에겐 뛰어남과 찬송과 명예와 영광의 삶이 약속된다!

     

상황:17절의 이스라엘의 확언은 하나님을 향한 상향적 확언이다. 반면에 18절의 확언은 하나님의 하향적 확언이다. 쌍방향의 확언이 서로 만나면 양편에 놀라운 시너지적 결과가 약속된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고, 그들은 찬송의 대상이 되며 명예와 영광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배롭게 하심으로써 큰 기쁨과 영광을 취하실 것이다. 불완전한 비유이지만 마치 김연아와 그 어머니와 같다고나 할까? 내게도 중요한 것은 철저히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고자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확언하는 것이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라는 가사처럼 주저거림 없이 확정하여 하나님 앞에 고백과 선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확언도 있게되고 나에게도 같은 류의 약속이 주어진다.  나는 진정 지금 이 점에 있어 희망을 느끼고 있는가? 뛰어남의 삶에 대해 젊은이와 같은 흥분과 욕심이 있는가? 이젠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고 이런 희망은 나이든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새해의 첫날도 아니고 20대 청춘이 창창한 미래를 앞두고 내리는 결단도 아니지만, 나는 지금 새롭게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내 영혼을 확정시키고 확언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노년이 되고 말년이 될 수록 그 놀라웁게 쓰임받았던 주의 종이라 쓰임받았던 자들이 왜 그렇게 추하게 망가지는지요? 어쩌면 저들의 감춰진 신념이 다 드러나는 것 같은 모습들을 봅니다. 그래서 크리스찬도 별 수 없이 인생을 다 그렇고 그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면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이 시간 회개합니다. 나의 느슨해졌던 생각을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 확언하오니 제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전심으로 지키며 살겠나이다."

 

변화: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확언하며 확언한대로 살자. 내가 확언 시 하나님도 확언해주시고 약속을 주신다. 그리고 내가 확언한대로 살 때 그 약속을 실현시켜주신다. 이 시간 가장 나에게 필요한 결단과 이에 따른 확언할 것은 내 가족에게 짜증기를 말하는 것을 중단하고 내 스트레스 해소를 더 건강하게 푸는 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주님 내 감춰진 분노, 내 감춰진 짜증, 내 감춰진 화를 잘 다루고 언제 어디서나 내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포인트: 나의 확언에 하나님의 더해지게 하라!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