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마6:5-18
도전: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
상황:외식하는 자들의 문제는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을 더 의식하는 데 있다.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이 없는 은밀한 곳에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보다는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한다. 그리고 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기를 마치 내가 뭔가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행동주의 실적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인격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모르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심지어 금식할 때조차 마치 전혀 금식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꾸미라고' 가르치신다. 위선이 아닌 '위악'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말은 사람들이 내가 금식하고 있는 것을 인지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라는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만 의식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바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도 외식하는 자의 범주에 있다. 어느 사이에 나도 오랜 신앙생활, 교회생활,사역자 생활을 해오면서 어느 사이에 내 안에 외식하는 자의 모습이 생겼고 그것이 두터워졌음을 느낀다. 어찌할꼬?
변화:나는 합심기도를 믿는다. 그러나 합심기도를 이끄는 시간과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와 교제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1:10의 비율로 하자. 내가 합심기도를 이끄는 시간은 아주 작은 빙산의 일각이고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은 빙산 밑의 밑둥처럼 훨씬 커야 한다.
-->외식과 위선의 기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사람 만나는 절대시간을 줄이고 하나님 앞에서 '은둔생활'의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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