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6:12-13, 마14:23, 요6:15

 

요6:15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도전: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민심과 천심(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다. 

 

상황:민심이 천심이라 했던가? 아마 적잖은 경우 그럴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이고 이것이 그런대로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다. 따라서 민심을 거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민심이 천심과 다를 수도 있다. 오히려 천심을 거스리는 것이 민심일 경우도 적잖다. 이 점에 있어 안철수와 예수님은 역시 다르다. 감히 안철수 정도를 예수님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적인 것일 수 있으나 비교해 보면 안철수는 지금 여론과 인기와 상황와 백성들의 요구에 밀려 자신을 향한 오리지널 소명과 비전이 대통령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의 뚝이 무너지는 마당에 안철수가 IT 사업가로 교수로서의 사명에만 충실하여 시대의 요구와 정신을 외면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만약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고 그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으면 바라고 기도하는 나로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안철수가 자신을 향한 원 부르심을 접어두고 민심을 따르면 그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되고나면 "거봐라 안철수를 향한 민심이 천심이 아니었겠는가?!"로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여기엔 아주 중요한 그러나 결코  옳다고 볼 수 없는 전제점이 깔려 있다. 대통령되는 것이 기업가나 교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라는 전제점이다. 그러나 난 여기 동의할 수 없다. 안철수가 기업가로서 교수로서 원부르심에 맞지않는 대통령직보다 더 훌륭한 삶과 역할을 못할 것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엔 얼마든지 묵묵히 자신의 길을 향한 천직적인 소명을 갖고 살면서 일개 대통령보다 더 천심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안철수는 설령 대통령이 되어도 그것은 그가 더 훌륭한 기업가나 교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난 안철수가 예수의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본다. 물론 그가 크리스찬도 아닌데 예수의 길을 기대나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는 그저 한낱 한 때 인기몰이를 하는 인물 정도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도 예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비추어 내가 사고해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긴 안철수를 이런 관점에서 말하면 "그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라는 말이냐?"고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안철수를 논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안철수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할

     지 그 근본적인 속성과 원리를 말하는 것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찍고 안찍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변화:민심과 상황에 의해서 보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자!

→: 나를 향해 KSM형제가 요구하고 도전한 길보다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더 그 뜻을 살피며 나의 원부르심에 맞는 길을

       가자. 그 길이 인기있는 길이 아니고 돈버는 길이 아니어도! 또한 내 노후를 보장해주는 길이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가장 기뻐하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는 묵묵히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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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3:1-7

 

도전:불편한 명령-진노 때문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상황: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언론사의 기자와 논설위원 생활을 하신 아버지는 거의 가정을 모르고 사셨고 마침내 정치하시다가 사상범으로(혁신계라는 낙인이 찍혀) 감옥에 가셨다. 무려 5년 정도 계셨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엔 조용한 곳에서 글쓰시고 사업하시느랴 역시 집을 돌보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나는 고등학교 들어가기까지 아버지가 살아 계셔도 사실상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 살아 온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부턴 어떤 일의 계기로 아버지와 아주 가깝게 보내는 기간이 적어도 내가 결혼하기까지는 이어졌지만.

그러다보니 난 윗 권위와 상대하는 법을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내온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갈등은 특별히 윗사람 남자들하고 있었다. 이 점에 있어 나는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해서 뭔가 저항감이 있었고 반골적 기질이 작동했다. 이런 나에게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은 사실상 꼴통이 되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인생 살아보면 역시 '상사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이 있다.그러나 이런 기술적 차원 보다는 양심에 입각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 정말 마음이 불편해진다.

 

변화:내 마음에 불편이 있어도 위에 있는 권위를 존경하고  복종하자. 물론 하나님나라의 관점과 가치 속에서 짠 맛 잃은 소금처럼 순증주의자가 되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개혁적 변혁적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윗 권위를 존경하고 복종하는 자가 되자.

 

→: 윗 권위에 대한 신앙적이고 양심적인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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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2:14-21

 

도전: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의 근거와 동력이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진노

       하심에 맡기는 것으로 가능하고 충분한가?

 

상황:과연 하나님께서 내가 직접 한풀이를 하는 것보다 더 시원하게 더 완벽하게 한풀이를 해주실까? 솔직히 미덥지않다. 하나님의 나 대신 원수 갚는 것을 믿어도 되며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정당한 원수 갚기를 무작정위탁해도 될 것인가?  물론 하나님께서 내가 죄성으로 더 오바하여 한풀이를 할까봐 운동 경기의 심판관처럼 하실 필요성이 있는 것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원수 갚는 것 자체를 맡기라고 하시면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자, 봐라! 내가 너 대신 원수 갚는 것이 이만큼 완벽하하지 않아?"라고 하실 수 있는 것을 보여주셔야하지 않는가? 아직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또 나의 개인사에 있어 하나님의 공정하게 대신 원수 갚기에 대해서 의혹과 의구심이 많이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컨대 똑같이 독재자이었으나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죄과는 박정희의 죄과보단 훨씬 크고, 문명사적인 기여에 있어 누구나 인정하듯이 박정희의 공적이 더 훌륭했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왜 김일성,김정일의 죽음은 그렇게 평탄한 죽음이고 박정희는 그렇게 끔찍한 말로를 맞았나? 그래, 그의 독재와 그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권 착취와 억울한 죽음 등을 볼 때 박정희는 그렇게 죽어 싸다고 말하자. 그런데 6.25 등을 일으켰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기아로 수용소에서 죽게한 김일성,김정일은 어떻게 그렇게 곱게 죽어야 하나? 아--헷갈린다!  이런 면에서 사도바울의 가르침은 무엇이고 그 말씀 붙잡고 아주 억울하게 살았던 믿음의 선조들의 모습은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일단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여기서 시편73편의 저자와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떠오른다.

                   시73편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마음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마음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육체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박국2장

7. 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8.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박국3장

12.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14. 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변화:시73편 저자가 '주의 성소에 나아가 ' 알게되었듯이 내가그저 불평하고 투덜거리지 말고 하나님의 전에 이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 나아가 하나님의 응답을 듣자. 시편저자는 그 악행하는 자들의 행위가 마치 꿈 속에 일처럼 깨고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듯이 그럴 것이라고 한다.분명히 내게 요청되는 것은 주님 자신과 더 친밀해져서 주님의 속 생각을 더 잘 알게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 이슈를 하나님의 자신의 관점과 영원의 관점 및 현세와 내세를 아우르는 통세적 관점에서 보고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하박국처럼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하박국3장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오장육부가 흔들리고 뼈가 썩는 역사의식 속에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양극성 신앙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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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2:1-13

 

도전:1-2절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림과 뜻 분별의 명령은 3-13절의 공동체 안에서의 body life와 연결지어 생각해야 한다.

 

상황:이 본문에는 두 종류의 몸이 나온다. 하나는 1절의 '너희 몸'이라할 때의 성도 개개인의 몸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13절의 그리스도의 몸, 즉 기독공동체 또는 교회를 가르친다. 사실인즉 내 몸이란 것도 반드시 내가 속한 몸 곧 공동체 안에 달라 붙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며 제대로 역동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몸을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려면,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잘 분별하려면 나는 공동체 안에서 지체의식을 갖고 다른 지체들과 연락과 상합의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내 은사를 발휘하고 다른 지체들의 은사 발휘의 혜택을 입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가르치는 은사가 있다면 그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내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보다 더 잘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내게 주어진 소중한 관계들을 몸과 지체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자. 그저 언제 내가 이용할 목적의  소셜한 관계로 바라보고 대해서는 결코 안된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몸의 관계가 되도록 힘쓰자.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young2080 식구들과 생생플랫폼,정감운동,윌버포스기도회,느티나무모임 멤버들과 깨끗한 마음속에서 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맺자.  그것이 내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첩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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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25-36

 

도전: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심'

 

상황:그 누구도 자신의 불순종과 그 결과로 인한 책임을 면책받을 수는 없다. 이것이 성경적 가르침이다. 그러나 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날고 떨어지고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누군가의 불순종도 하나님의 신비로운 주권적 통치 하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누군가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발견되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할 이유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호주에 있는 나의 두 동생과 그들 가족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심'을 풀어 주셔야만 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변화:불순종하는 자들의 자기결정과 자기책임 보다 상위개념인 '하나님의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심'의 파워를 내가 겸손하게 인정하자. 그럼으로써 사람의 모습과 반응에 내가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상대로 더욱 기도하며 하나님의 풀어주심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고 바라보는 자세와 노력을 가져야 한다.

 

→: 두 동생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모습에 내가 결코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의 가두어 두시는 파워와 그 반 면에 풀어 내시는 파워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담판짓는 기도를 더 힘써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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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1-6

1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도전: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기 위하여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한다.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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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5-23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도전:이제는 내가 죄로부터 해방되었으니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자(22절)

 

상황:어제 데이빗 윌커슨의 '비통함으로의 초대'라는 설교를 들었다.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이 패역한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접하면 이 세대에 대하여 비통함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메시지가 특별히 와닿았다. 비통함이 없이는 기도도 없다. 기도가 없이는 사역에 기름 부으심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죄악과 메마름과 이 세대의 정신에 물들어가는 것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용기있게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내가 스스로 비통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법적으론 예수님을 믿으니 죄로부터 해방된 자인지는 몰라도 실재론 죄의 종으로 남아있는 것인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보면 죄로부터의 해방됨에서 하나님께 종이됨 사이에는 갭이 있는 것 같다. 자동으로 A에서 B로 가는 것 같지 않다. A도 결단과 믿음으로 이루어지듯이 B로 가는 것도 나의 적극적 선택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과정에 AGONY의 통로를 거치지 않으면 겉모양의 '하나님께 종이 되는' 모습만 있는 것이지 제대로 된 그 능력과 열매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또는 열매가 맺힌다해도 뭔가 설익은 , 결핍이 많은 열매를 맺게될 것이다. 하나님께 종이 되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자동적으로 맺게된다. 요약하면 죄로부터의 해방->AGONY->하나님께 종이 됨=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음이다. 즉

A->AGONY->B=C. 중요한 것은 죄로부터의 해방됨과 하나님께 종이 됨 사이에 AGONY와 치열함 속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하나님, 제가 제 죄악과 죄성을 통렬히 회개합니다. 제 죄악 하나하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망치 소리 하나하나가 울리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비통해하는 소리가 들리나이다. 하나님, 이젠 죄와 목숨을 걸고 싸우고 뜨거움으로 ,끓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길 원합니다. 당신의 공의와 사랑이 가장 충만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에 관심갖고 치열함으로 몰입되게 하소서.

 

포인트: A->AGONY->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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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1-11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도전: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단계가 있다. 입문 단계에서부터 더 깊은 심층적 단계.

 

상황:"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2절,표준새번역)--->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단계(은혜의 자리)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단계가 있다.

그리고 ,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10절,표준새번역)----->하나님의 원수이었을  때->하나님과 화해(아들의 죽으심으로)->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 단계.(성화적 차원의 구원인가 영화적 차원의 구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해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할 계획을 갖고 계신다. 또는 칭의적 구원을 넘어 성화와 영화라는 단계의 구원을 기대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지속적 성장을 원하신다. 이른바 영적으로 등업을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신앙의 등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현 단계를 일단 완벽히 마스터 해야한다.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등업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마치 피아노 치는 학생이 그런 것처럼.또는 천로역정 속의 여러 단계처럼.  성경 속의 계시를 통해 더 깊어지는 단계를  알아보고 기도 속에서 성령의 인도로 깊이있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절대 안주해서는 안된다. 내가 더 깊이 그리고 명확히 알아야할 주제들이 있다. 이른바 종말론을 비롯하여 아가서에 대한 이해, 두나미스 성령사역에 대한 이해와 체험 등 --  

 

변화:학구열과 성장욕구는 갖되 과한 욕심부리지 말고 한 단계, 한 단계를 제대로 완벽히 마스터해야 한다. 좀 더 리서치와 묵상과 기도(prayxis paradigm, pray+praxis) 중심의 삶을 살면서 그 다음 단계로 인도받아야 한다.

 

포인트: 영적 등업을 끊임없이 시도하라!

Posted by 고직한

로마서 4:13-25

13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도전: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백세에 청춘같은 믿음

 

상황:아브라함은 정말 놀랍다. 백세에도 하나님의 언약 자식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진 아브라함!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튼실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 얼마나 사람들은 고령화되어 가면서 믿음이 답보내지 퇴보 상태에 빠지는가? 그런데 아브라함은 백세에도 청춘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으니! 나이 60을 바라보는 나와 나의 아내에게도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청춘같은 믿음이다. 다음세대를 위해 평생 일하겠다는 나의 부르심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그 종말을 요구받는 것 같다. 그러나 노욕이 아니라 아브라함같은 믿음이 있다면 나이들어도 오히려 더 빛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의 사역에 안주하지 말자. 고정관념 속에서 다음세대 사역을 말하지 말자. 내가 30,40대인 것처럼 그 역할을 할 수는 없어도 내가 해야할 중요한 일들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벼슬인 사회속에서 다음세대를 위해 펀드레이징하는 일, 나이든 60,70대 권사님들을 다음세대를 위해서 기도하게끔 동력화하는 일 등 서포트 사역만이 아니다. 사이버를 통하여 한국의 주요교단 신학교들이 못하고 있는 다음 세대 사역자들을 일으키는 일, 코스타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 일 등---선교한국을 위해 돕는 일등--- 너무도 많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신앙의 회춘기를 갖는 것이다. 갱년기와 노년기에 파묻혀 믿음이 시들어지게 해선 결코 안된다.

 

변화:백세에 청춘같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을 좀 더 연구하여 그 믿음이 내게 임파테이션이 일어나도록 하자.

 

포인트:백세에 청춘같은 믿음!  

Posted by 고직한

로마서 4:1-12

1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도전:나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상황:아브라함의 믿음도 위대한 것이나 그 믿음을 가능케한 믿음의 대상되신 하나님께서 사실상 모든 것들을 다 예비해놓으신 것이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음으로 의로 간주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온라인 상에 최고의 유토피아 랜드를 다 구축해놓고 나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다 알려주고 언제든지 들어와서 그 모든 것들을 다 누리라고 할 때 오직 내가 할 일이라곤 접속해 들어가는 것 뿐인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리얼의 세계에서 그 이상으로 완벽하게 구속사 플랜을 세워놓고 그리고 그 컨텐츠들을 다 완비해놓으시고 나를 그리로 접속해 들어오라고 하신 것이다. 믿고 접속해보느냐 아니면 무시하고 접속하지 않느냐! 오직 믿음으로만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믿음조차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내 안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되신 하나님께서 믿을만한 소식을 내게 주신 것이므로 내 안에 믿음이 생겨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은혜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은혜를 맛본 자는 인생이 달라진다. 지옥이 천국으로 변하는 축복을 누린다. 이 엄청난 축복을 누린 자가 세상의 것들에 눈을 돌릴 이유는 없는 것이 아닌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 안에 접속해 들어가 매일 매 순간 신비에 이어 더 큰 신비가 열리는 세계를 경험하자. 그리고 그 경험한 것이 흘러넘쳐 주변으로 흘러가게 하자!

 

변화: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축복은 단지 내가 그리스도 안으로 처음 들어가는 입문 과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입문에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더 깊이 더 깊이 백개 천개의 문이 있는 것처럼 하루 하루가 새로운 입문이 되게 하자. 얕은 바닷가에서 하나님의 심해의 맛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더 깊이 들어가자. 믿음으로!

 

포인트:믿음의 매직 파워, 매순간 체험하며 살자!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