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우리 사회에 2030의 세대혁명이 일어난 해다. 월드컵 축구의 온 국민 거리응원을 이끌어낸 주역들이 20대와 3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또한 ‘효순이와 미선이’를 안타까워하며 촛불시위로 광장문화를 만들어낸 힘도 그들에게서 나왔고 노풍을 일으키며 젊은 대통령을 만들어낸 장본인도 바로 2030세대였다. 이 세대의 폭발력은 2030의 영어(Twenties & Thirties) 두음을 따서 만들어진 TNT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만한 것이었다. 지난 80, 90년대의 이른바 운동권 시대엔 2030세대는 ‘내일의 지도자’임을 거부하고 ‘오늘의 지도자’로서 변화를 주도하려 했고 오늘날에 와선 막강한 구매력을 갖춘 세대로 기업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명실 공히 2030의 세대혁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목회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흐름이 크리스천 2030들을 교회로부터 사회로 끌어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같은 젊은이들을 놓고 교회보다는 사회가 더욱 강력한 흡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회의 곳곳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인의 연령분포를 인체에 비유해 볼 때 마치 배가 나온 중년남성의 허리 부분이 바로 2030세대인 것을 보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는 젊은이들의 이탈로 인해 허리가 잘룩한 날씬한 아가씨의 몸매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거리엔 젊은이들이 가득 차고 교회 안엔 젊은이들이 빠져 나가 텅텅 비어 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젊은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나
누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는가? 무엇이 2030들로 하여금 교회를 등지고 세상으로 달려 나가도록 만들었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문제의 일차적 책임은 담임목회자에게서 찾아야 한다. 담임목회자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회의 권한이 담임목회자에게 가장 많이 주어져있다면 책임 또한 가장 많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한 지역 교회 안에서 담임목회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는 열왕기하 2장에 나오는 ‘물 근원’ 이야기를 떠올리고 싶다. 담임목회자, 그리고 교회 안의 중요한 리더십을 행사해야 하는 중직자들을 ‘물 근원’으로 비유하고 싶다. 물의 근원이 치유됨으로써 그 지역의 과실들이 잘 맺힐 수 있었던 것을 보면서, 필자는 한국교회의 청년목회를 보면 교회의 물 근원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감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목회의 주역은 청년목회자와 청년들이겠지만 청년목회의 토양은 담임목회자와 당회와 같은 중직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물 근원을 탁하게 만드는 주원인은 무엇일까?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국교회의 물 근원은 돈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담임목사 및 당회원들은 청년목회는 ‘돈이 들고 돈이 안 되는’ 목회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청년대학부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투자해 보았자 장년들과는 달리 빠른 시간에 돈이 되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담임목사들과 장로들이 ‘헌금도 못하는 것들’이라며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이에 대해 필자는 교회의 재정자립과 재정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러나 목회 정책과 전략의 동기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데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되새기고 싶다.
사실, 돈의 논리로만 청년목회 문제를 풀라면 오히려 얼마든지 풀 수도 있다. 우선 젊은이들이 신앙이 제대로 심어지면 헌금 역시 장년 못지않게 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25년 청년사역 경험이다. 게다가 청년대학부를 수료하고 떠나게 되는 이들을 사전에 철저히 교육하여서 후배를 사랑하는 차원에서 장학회나 선교회를 만들어 후원하도록 한다면 돈은 사실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왜 교회의 젊은이들이 교회로부터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젊은 시절에 하나님의 은혜에 잠기는 체험을 했고 평생에 가장 값진 훈련을 받게 되었다면 자기 후배들을 위해 평생 선교 헌금을 하지 못하겠는가!
둘째, 한국교회의 물 근원은 ‘청년목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편견으로 오염되어 있다. 투자해 보았자 반대급부가 없다는 식의 논리로서 처음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첫째 것은 돈에 관한 것이고 이것은 사람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청년대학부에 배려를 많이 한들 어차피 몇 년 있으면 자기 갈 곳으로 다 흩어질 젊은이들이므로 젊은이 사역은 교회 입장에서 보면 별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설령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하여도 해외 선교하는 마음으로 청년대학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싶다. 더 나아가, 교회를 지나치게 모이는 교회로만 이해하여 교회의 예배나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사람들만 교인으로 보는 관점을 이젠 극복해야 한다. 모이는 교회도 중요하지만 흩어지는 교회 역시 중요하다. 모이는 교회를 위한 목회적 배려가 필요하다면 흩어지는 교회를 위한 목회적 배려 역시 창의적으로 제공돼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지방에 있는 교회라면 서울이나 대도시로 흘러들어갈 청년대학부 졸업생들을 온라인 및 오프라인 상에서 적절하게 네트워킹할 수도 있다. 실제로 어느 교회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들어간 지역에서 한 교회를 같이 섬기면서 정기적으로 자신들의 교제를 갖고 있다. 그리곤 후배들이나 모교회의 성도들 혹은 목회자들이 오면 다같이 모여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고 모교회를 위해 기도하곤 한다. 이런 일들이 좀더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면 위에서도 말했거니와 재정적 후원도 더 활성화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때 청년대학부에 몸담았다가 타지역으로 가서 새로운 교회 생활을 하게 된 젊은이라 할지라도 마치 시집간 여성이 자기 친정을 사모하며 보살피듯이 모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사랑을 베풀 것이다.
셋째, 한국교회의 물 근원은 청년대학부는 뜨거운 감자라는 생각으로 오염되어 있다. 젊은이들을 많이 키워봤자 그들의 이상주의로 인해 골치만 아프다는 것이다. 고양이처럼 생각하고 키웠으나 주인을 잡아먹는 호랑이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2030 세대혁명으로 인해 곳곳에서 기성세대들과 균열음이 일어나듯이 잘못하다간 교회마저 그렇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정말 지도자답지도 않고 어른답지도 않고 선배답지도 않은 지극히 비성경적인 생각이다. 그저 지금까지 일어난 것에 안주하겠다는 심리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며 미래에 대한 준비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사실 젊은이들을 조금만 지도해 보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젊은이들이 신앙을 제대로 갖게 되고 또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면 알수록 당연히 교회의 권위에 대해서도 존경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더 깊이 형성된다. 또한 윗세대의 사랑과 배려를 많이 받은 젊은이들일 수록 어른들을 이해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더욱 많아지고,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모습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년목회의 관점에서 교회의 물 근원이 정말 새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물 근원의 변화의 일차적 기대는 아무래도 담임목회자에게 두어야 할 것이다. 

청년목회의 하드웨어의 변화를 찾자
그렇다면 담임목사가 청년목회를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준비는 무엇일까? 담임목회자가 직접 청년목회를 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적어도 청년목회를 위한 좋은 토양이 만들어지게 하는 일에는 마땅히 책임을 지게 된다. 컴퓨터에 견주어 필자는 다음 네 가지를 적용해보고자 한다. 우선은 청년목회의 하드웨어(Hardware)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첫째, 청년들을 위한 주일 대예배를 만들어 보자. 주일 대예배 중의 하나를 청년들을 목표로 하는 예배로 전환한 교회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비교적 빠르게 젊은이들의 활성화를 가져 왔다. 이 경우 좀더 젊은이들과의 코드가 맞는 예배 형태와 설교가 중요하다. 특히 찬양팀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찬양팀이 정기적으로 전문기관에 가서 위탁교육을 받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강단사역은 담임목회자와 청년목회자가 분담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청년목회자가 거의 담당하기도 한다. 다만 설교자가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그 장단점을 생각해보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며, 어쨌든 청년들의 상황과 정서에 보다 밀착되는 예배와 설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주일학교 교육구조와 청년목회 구조를 이원화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청년대학부는 교육목사의 지도 아래에 있다. 이 경우 교육목사가 청년목회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적지 않은 어려움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교육목사가 청년부를 주일학교 교사인력수급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주일학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청년들은 교육의 주체이기 전에 교육의 객체이다. 그들은 먼저 제대로 신앙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청년대학부 생활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청년목회를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상 중장기적으로 보면 청년대학부는 교회와 사회와 세계를 위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다림과 성숙의 요소가 필수다.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적절하게 섬기고 사역하도록 해야 하지만 동시에 잘 양육 받도록 해야만 하며, 이 두 사이에 건강하고 지혜로운 긴장관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련 목회자들의 이해와 협력 가운데서 가능할 것이다. 
셋째, 개 교회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연합체나 전문기관의 위탁사역으로 풀수 있다. 한국교회 청년대학부의 95% 이상은 평균 20명 안팎의 규모다. 그리고 청년대학부 목회자 대부분은 청년목회와 관련해서 파트타이머이고 비전문가다. 그렇다 해도 물론 청년들은 기본적으로는 담당목회자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전제 아래, 예를 들어 차기 리더를 배출하기 위한 LTC(Leadership Training Course)나 여름 또는 겨울 수련회 등은 신뢰할 만하고 검증된 연합체나 전문기관의 위탁사역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소프트웨어들에 대한 눈썰미를 키워라
청년대학부에 주로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큐티(QT)교재이고, 둘째는 소그룹 성경연구 자료이고, 셋째는 제자훈련 교재이며 넷째는 기타 여러 가지 활동과 사역에 필요한 자료들이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와 있는 자료들은 대부분 대학생 선교단체들에서 발행한 자료들이다. 그런 점에서 청년대학부들에게 도움이 되는 점도 많으나 교회용으로 몇몇 적합지 못한 면들도 있다. 우선, 교회론이 약하거나 달라서 교회 중심적이지 않다. 둘째, 교회의 수준에 비하면 훈련의 요구가 높아 교회의 젊은이들을 위한 대중성이 떨어진다. 셋째, 외국의 자료들을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한국적 토양에 적실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상황(소그룹 환경, 훈련 기간, GBS시간 등)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 아니므로 내용은 좋아도 그 전달 방식이 적합지 못하다. 따라서 담임목회자는 청년대학부 목회자들이 교재 선택에 있어 보다 신중할 것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일단 쉽게 그리고 확실한 방법으로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청년대학부 현장에서 이미 장기간에 걸쳐 검증된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고 교회의 청년대학부의 상황을 고려하여 교재를 만드는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 

휴먼웨어에 눈을 뜨자
청년대학부 내의 리더들을 발굴하고 필요한 사람들을 적절히 세워가는 작업은 청년대학부 지도 교역자의 책임과 권한이다. 그러나 담임목사가 몇 가지 핵심적인 인사 문제에는 지도 교역자에게 방향 제시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대학부의 휴먼웨어(humanware)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역할의 사람은 역시 공동체를 세워가고 이끌어갈 지도 교역자다. 그리고 청년대학부의 부장 역할을 맡는 집사 혹은 장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 담당자들이 청년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실제적인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청년대학부가 목회자 되는 데 거치는 과정정도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사실 국내의 신대원들은 대체로 청년목회에 대한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조차 해주지 못하는 가운데 졸업생들을 청년목회 현장에 흘러들어가게 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한국교회 안에 청년목회자들을 어느 정도 구비시켜줄 수 있는 기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청년목회컨벤션’, ‘젊은이를 깨운다 세미나’, ‘청년목회자훈련학교’ 등). 또한 아무리 청년목회자가 동기유발이 되어있고 청년목회 방향과 전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동역할 부장 집사나 간사 등 핵심 인물들이 그 목회자의 비전과 의식과 전략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굉장히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이들 역시 훈련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고련돼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청년목회를 위해 평신도 지도력을 일으키는 일이다. 평신도 지도자를 잘 발굴하고 훈련시켜서 간사로 세우고 그들을 통해 지속적인 안정적 리더십을 발휘케 하면 여러 가지 유익이 클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과정을 통해 검증된 사람을 신학교로 보내는 청년목회자로 사역하도록 한다면 더욱 이상적일 것이다. 

청년목회 스피릿웨어(Spiritware)가 중요하다
사실 담임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이것이다. 이른바 청년성(청년spirit)을 소유하는 게 해당 교회의 청년목회를 꽃피우는 데 가장 중요하다. 청년스피릿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하지 않는다. 젊었어도 청년스피릿을 상실한 애늙은이가 많고 늙었어도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따라 생명력과 젊음과 열린 사고를 가질 수 있다. 청년들은 담임목회자에게 ‘푸른’ 사고를 기대한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진취적 사고를 갈망한다. 이미 이루어놓은 것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이 자기갱신과 자기희생을 보여주는 행동에 갈채를 보내고 싶어 한다. 성령충만의 결과는 반드시 청년성의 회복과 발현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감정만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자기 개혁과 갱신을 강력하게 몰고 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나라를 향한 충성과 헌신을 새롭게 하도록 만든다. 청년들은 이런 담임목회자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던지려고 한다. 이 청년성의 상실은 교회를 급격히 노화시키고 있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성경과 역사와 사회에 있어 청년이란 단지 2030의 싱글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은 이상과 꿈과 비전과 생명을 상징한다. 청년은 변화와 진취성을 표상한다. 청년은 힘과 헌신을 뜻한다. 따라서 한 교회 안에서 청년목회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은 단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고 적게 모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 본질의 회복을 뜻한다. 교회다움을 말해주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청년목회가 없는 장년목회만의 추구는 변질이요 타락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이 없는 현실 안주요, 하나님나라에 거역하는 목회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무겁다. 담임목회자가 변하면 청년목회가 살고 교회 전체가 산다! 이런 정신으로라면 청년목회는 더욱 소망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Posted by 고직한
아르헨티나 중앙교회
2014.2.2. 주일설교
열왕기상 18:12-13
[왕상] 18:12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왕상] 18: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