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2:12-18

 

도전:나의 구원의 확신은 바울이 말하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상황:칭의적 의미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성화적 의미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도상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하여서 마치 더 이상 성화될 필요성이 없이 온전함에 도달한 것 같이 확신한다면 이것은 오만이고 근거가 없는 억측(presumption)이다. 온전한 의미의 구원에 이루기 위해서는 두렵고 떨림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겸손할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고 어찌하면 온전함에 이를지 하나님 앞에 마치 시험준비하는 자가 불을지말지를 노심초사 걱정하며 준비하는 것같이 하라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시 기독교의 진리의 패라독스를 본다. 칭의적 의미의 구원에 대해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진대 아주 강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나, 성화적 의미의 구원과 관련해서는 구원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또는 자신이 도달한 지점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만족스러워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두렵고 떨림의 자세가 나홀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외로운 싸움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내 안에는 '행하시는 이'(God who works in me)가 계시고 그 분은 내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14절).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흠이 없고 순전하여'질 때까지이다.그것도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그렇게 입증이 되어야하는 것이다(15절). 그럼으로써 나는 패역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16절). 이런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기대하는 성화적 구원이란 온상에서의 나약한 성장이 아니라 비바람 몰아치고 온갖 더위와 추위의 역경이 있는 세상 속에서의 강인한 구원을 말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내가 온전함을 추구하면 죽음의 위협이 있는 그런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빛이 되길 원하신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많은 내공이 필요할까?! 

 

변화:나야말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을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더욱 치열하게 살자.

 

→: 성화적 의미의 성장과 구원을 위해 더 많은 내공을 쌓고자 하는 나의 결단이 더 강화될 수 있는 생태계 속에 나를 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내가 관계하고 있는 소공동체들이다. 이 소공동체에 임하는 자세를 좀 더 새롭게 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고 더욱 성실하게 하자.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