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5:1-13

 

도전:"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상황: 이스라엘은 온갖 불의가 판을 쳐서 정의가 쓴 쑥과 같이 바뀌었고 공의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것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런 때에 지혜자는 잠잠할 수 밖에 없다. 괜히 뭔가 정직을 말했다가 개선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자가 봉변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멸하시고 약 십분지 일 정도만 남기겠다고 예고하신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살 길의 희망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데서만 나타난다. 이것은  정말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언제 하나님을 찾는다 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항상 입으로는 모양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였으나 행동으로는 철저히 하나님을 배교한 자로서 살았던 것이다. 성소를 찾았으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유사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유사행위였다는 것은 그들이 공의를 뒤집고 정직을 핍박하고 이웃을 말아먹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유사품 주의!" 이 말은 "신앙 유사품 주의!"라는 말로 적용될 수 있다. 유사품은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유사품은 사람의 눈을 속이되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만 그런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유사품은 드러날 수 밖에 없으면 색이 바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에게도 많은 유사행위가 있다.   꾸며진 모습이 많다. 위선이 많다. 이것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진정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그 길이 내게도 살 길인 것이다.

 

변화:내가 진정 하나님을 찾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실 나에게 있는 신앙 유사품을 찾아내자. 그리고 벗어 던지자.

 

-->이번에 '크리스마스 스토리' 행사에 있어 유사행위는 걷어내고 오직 예수님께 '생신 상'을 차려드리는 마음만이 나타날 수 있는 것만 살려내도록 힘쓰자!

Posted by 고직한

암4:6-13

 

도전:하나님의 절규,"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상황: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먹을 것을 없게 하고, 가뭄이 들게 하였다.물을 실컷 마시지도 못하게 하셨다. 병충해와 메뚜기로 농작물을 막치게 하셨다. 전염병 보내고 말을 빼앗으며 젊은이들을 전쟁에서 죽게끔 하셨다. 결국 그들을 무너뜨리셨다. 마치 그들은 불 속에서 타다 만 막대기 같았다. 문제는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아니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기다리셨으나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반복되는 하나님의 이 말씀,"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를 묵상하며 나 또한 얼마나 그랬으며 우리 한국교회가 얼마나 그런지 생각하며 등이 오싹해졌다.

 

변화: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기 위해서 하신 일들을 이제는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 그리고 하나님께 정말 죄송했다고 말씀드리자.

 

-->새찬송가 525장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오라"를  오늘 차 안에서 운전 할 때 열번 부르며 소리내어 기도하자.(눈뜨고!)

 

 

Posted by 고직한

암3:9-4:5

 

도전: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를 건져냄과 같이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이스라엘이 건져냄을 입게될 것

 

상황: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사자에 잡힌 양이 잡아먹히는 모습말이다. 그 양의 목자가 달려와서 사자를 향해 돌맹이와 막대기로 몰아냈다해도 남은 곳은 양의 두다리나 귀조각 정도라면?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꼴을 당하게 될 것을 아모스는 예언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갖고있는 구원의 확신이란 것이 때론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또는 우린 선민이니 보호해주실거야라는 생각도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하나님의 이름을 둔 자녀라면 당연히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의 변화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한 편으론 우사웅배에 빠지면서 도덕적으로 완전 망가지는 지경에 빠졌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액션을 취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는 이방인들이 와서 이스라엘을 갈고리로 끌고가는 장면이다. 사실상 역사 가운데에서 이 예언은 불행하게도 성취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죄악을 반드시 씻어내길 원하신다. 문제는 자녀가 먼저 알아서 회개하여 씻어내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외압으로 그리 하시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외압을 쓰신다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것일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불의한 사회와 영적 도덕적으로 거의 마비되어가고 있는 교회 속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아모스적 결단과 삶과 사역을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변화: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와 상처회복과 평강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가 나를 향해 먼저 있게 하소서! 끔찍한 운명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내가 빠지게 하소서! 나와 내 교회와 내 나라가 이 무시무시한 심판을 느끼게 하소서!

 

-->오늘밤 체인지메이커들과의 엠티 중 말씀과 기도의 시간에 좀 더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갖자

Posted by 고직한

암3:1-8

 

도전:하나님은 어떤 중대 역사적 사건을 일으키실 때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다

 

상황:아모스는 사물과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예시하며 하나님께서 원인자가 되지 않고 어떤 중대 결과가 일어날 수 없음을 일곱 번이나 강조하며 역설한다. 그런데 그 원인자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선지자들에게는 미리 귀띰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들로 하여금 예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선지자는 어떤 식으로 하나님께 미리 귀띰을 받는 것일까? 환상 등을 통해서 그런 것 같다. 이른바 예언의 은사니 지식의 은사니 하는 것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은사가 아무에게나 주어질까? 렘23:18의 ‘여호와의 회의’에 기도 가운데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쓰시는 믿음의 개척자들은 기도의 사람인 것을 느낀다. 사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류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중의 비밀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수 있을까!

 

변화:내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비밀을 귀띰해주실 수 있는 믿음의 개척자가 되자!

 

-->설교와 강의 준비를 항상 일주일 전에 앞당겨하며 그 준비 전과 후에 충분히 기도로 예열하는 시간을 갖자.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심중의 비밀을 내게 푸시는 것을 기다리자.

 

Posted by 고직한

암2:13-16

 

도전:personal/social pressure를 풀고 놓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상황:아모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 예언은 '누름'(pressure)에 관한 것이다. 마치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누르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다.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다.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다. ----

하나님께서 누르심의 이유는 물론 하나님 백성들과 사람들의 죄악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르시는 목적은 무엇일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사람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재정적 압박을 당한다면 또는 무슨 정신적 압박이나 관계적 압박을 당한다면 그 압박의 도구나 상황만 보지말고 압박의 궁극적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어떤 공동체나 나라가 사회적 압박이나 나라 간의 압박을 받고 있다면 많은 요인 분석이 필요하나 그 누름의 궁극적 존재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압박하시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는 금융위기나 국가부도 위험으로 인해 거의 전방위적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점차 그러나 아주 빠른 속도로 그 압박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와 우리 믿는 사람들은 change maker로서 가장 무엇을 먼저 해야할까?

 

변화: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얼굴 구하며 회개하는 일이 나 자신과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는 일이다.

 

-->나와 아내의 아뜰리쉬다락방 기도회와 정감새벽나무 기도회, 클램팜기도회,다음세대를 위한 어머니중보기도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누르시는 각종의 압박을 푸시도록 기도로써 하나님을 '누르자'!

 

 

Posted by 고직한

암2:4-12

 

도전: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질 때-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님.

 

상황:하나님의 자녀라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의 존재와 행위에는 항상 하나님의 이름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아니 하나님의 이름이 오히려 그 존재와 행위를 이끌고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범죄를 하면그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의 보호 차원에서 뭔가 액션을 취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주 더럽히는 죄악을 많이 범했다. 그 중 아주 대표적인 예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 일거수일투족은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그 이름을 빛나게도 할 수 있고 그 이름을 더럽힐 수도 있다. 일종의 오늘날 말하는 브랜드와 비슷하다. 명품 브랜드 사용 계약을 맺은 회사가 그 브랜드에 걸맞는 제품을 만들지 않고 브랜드만 붙여 판다면 그 브랜드 사용을 허락했던 회사로부터 언젠가는 클래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변화:나는 하나님의 브랜드에 걸맞는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혹시 그 브랜드 밸류를 하락시키는 제품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지금까지 나의 삶에 있어 하나님의 브랜드 밸류 변화도표를 만들어보고 무엇으로 인해 최저가나 최고가가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졌을지 생각해 보고 회개 또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맥시멈으로 최고가를 끌어낼 수 있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기도하자. 

Posted by 고직한

암1:13-2:3

 

도전:잔인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상황:하나님께서는 죄 중에서 '잔인한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신다.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른 암몬 자손의 죄로 말미암아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 다 죄이나 잔인함은 더 큰 죄이다.

죄인은 남의 고통을 보면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엔 잔인함 없는 축제란 없을 정도이다.그리고 실로 형벌에서도 축제적인 것이 많이 있다.
나에게는 잔인함은 없는가? 나의 '계급'과 '문화' 속에 스며있는 잔인함은 없는가? 내가 북한 정권의 잔인함을 비판하지만 나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을 위해 이따금씩 생각하고 기도하거나 돕는다해도 전반적으로 그들을 향한 이데올로기적 태도 속에서 잔인함을 무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변화:나의 이데올로기적 사고 속에 스며있는 잔인함의 죄악을 직시하자.

 

-->나의 이데올로기를 좀 더 분석적으로 보기 위한 인문학적 스터디가 필요하다.

Posted by 고직한

암1:9-12

 

도전:"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상황:하나님께서는 두로의 죄를 지적하신다.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과 칼로 그의 형제를 좇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두로 성에 불을 보내고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 말씀 하신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세계사에 개입하시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개입의 중요 기준 중의 하나는  죄의 유무이다. 특히 나라 간의 전쟁은 하나님의 개입의 결과이다.  머리카락까지 세신 바 되신 하나님, 새 한마리도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게하시는  하나님이신데, 나라 간의 전쟁이 하나님의 허락이나 개입없이 일어난다고는 볼 수는 없다. 다만 아주 분명한 것은 죄의 유무와 죄의 정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아주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이다.

크게는 한국의 미래와 작게는 나의 미래를 예상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민족이나 어느 개인의 죄악을 결코 간과치 않으시고 그 벌을 돌이키지 않으신다는 점을 상수로 두고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우리 민족의 죄이든 나의 죄이든 하나님의 심판적 개입이 있기 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변화: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에 비추어 죄는 반드시 벌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최대한 하나님의 벌을 말해야 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 이번 주에 있을 총신신대원에서의 강의(목회자와 성)와 대전제일교회 청년부 집회 등 말씀을 전할 기회를 가질 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아주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Posted by 고직한

암1:1-8

 

도전:하나님께서 사자처럼 포효하시고 우뢰처럼 소리를 발하시면 자연계가 진동하고 그 나라는 물론 주변국의 운명이 달라진다.

상황:바로 요엘서에는 동일한 표현으로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3:16)라고 하였다. 그 때 그 맥락은 그런 포효와 우뢰소리를 전후로 범죄한 이스라엘의 운명이 회개와 성령의 부어짐으로 극적으로 아주 판이하게 달라지고 회초리로 쓰였던 주변국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되는 일이다. 이제 아모스도 아모스서의 예언을 열면서 똑같은 표현으로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2절)라고 한다. 사자의 포효에 해당되는 roaring과 우뢰소리 thunder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다. 놀라자빠지고 무시무시한 소리인 것이다. 무한 데시벨의 소리인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존재에 맞닥뜨릴 때 지극히 작은 자인 인간이 살아남을 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열강의 왕일지라도. 그 존재감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시온과 예루살렘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리고 동심원식으로 주변국으로 퍼져간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해 모든 죄악들은 드러나고 심판받고!그러나 이 심판의 상황에서조차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고 성령을 받는다고 먼저 요엘은 말했었다. 아모스는 이런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목자의 신분에서 선지자의 역할로 운명이 달라진 것이다.

지금 세상과 역사가 조용하다해서 안심할 수 있을까? 이미 여러가지 포효와 우뢰의 징조가 보이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변화:목자에서 심판의 선지자로 돌변할 수 밖에 없었던 아모스. 사람들은 위로와 격려를 듣기 원하지만 회개없는 위로와 격려는 아편이다. 아모스적 예언이 내 안에서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포효와 우뢰의 징조를 보고 듣는 눈과 귀를 제게 주소서!

 

-->내가 섬기고자하는 두나미스 성령사역은 어디까지나 아모스적 심판의 '신적 포효와 우뢰'를 믿음으로 접하며  철저한 회개 위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얼마 전 묵상한 요엘서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Posted by 고직한

요엘3:15-21

 

도전:망국 직전의 예루살렘의 극적인 반전의 요인과 동력은 무엇인가?

 

상황: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일어날 변화는 아주 드라마틱하다. 주변의 환경들이 아주 기름지게 될 것이고, 반면에 예루살렘의 죄악에 대한 회초리로 쓰일 근처의 나라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무지가 될 것이다. 이런 극적 반전은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이 경험한 것에 비유될 수 있을까? 그토록 초라하던 최빈국 우리나라가 오늘날 선진국에 진입한 것과 견주어도 될까? 요엘이 말하는  이 극적 반전의 인간 편의 요인은 철저한 회개이고 하나님 편에선 오순절적 성령의 부으심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님의 위대한 복음적 사건들이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목적은 회개하고 주를 부르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시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풍료롭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축복/심판의 프레임이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요엘의 이 극단적인 마지막 승리의 모습에서 엄청 스릴과 흥분을 느낀다. 이 요엘적 전개는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개개인에게도 또한 공동체에도 나라와 민족에도 유효하다.

내가 성경에 근거하여 꿈꾸는 성서한국,통일한국과 선교한국의 비전이 실현되는 모습이 바로 이 요엘적 클라이맥스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그 클라이맥스의 화려한 실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변화:요엘적 결말은 요엘적 심판을 예상을 하고  진심으로 하는 회개이고 이에 반응하여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중보기도 운동에 더 헌신하고 회개와 화개에 합당한 삶을 일으키는 사역에 좀 더 focusing을 해야 한다.

 

-->현재 내가 섬기는 기도회(클래팜기도회,정감새벽나무,7인 기도회, 다음세대를 위한 어머니중보기도단, PINK & WPA, 선교한국기도합주회)를 보다 더 열심과 성실함으로 섬기고 다른 중요 사역들도 더욱 회개와 성령을 위한 기도에 기초하여 전개하도록 하자.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