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8:1-17

 

도전:예수님을 놀라게 한 가버나움 백부장의 정말 큰 믿음

 

상황:"와, 제가 나를 저렇게 크게 나를 신뢰하다니!" 이것이 백부장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첫째,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면서 로마인으로서 예수님을 믿은 것이아주 놀랍다. 형통적으로 선민의식이 강하나 정작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않는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이 이방인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엄청 컸던 것이다. 둘째,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의 중풍병을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오시지도 않고 멀리서도 명령 한마디로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었다.  내게 필요한 믿음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백부장은 하인의 중풍병과 예수님의 말씀 사이에 어떤 치유적 관계가 있음을 갈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백부장이 자신이 명령체계 속에 있는 사람으로서 상관의 말에 자신이 복종하고 자신의 말에 하인이 복종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과 중풍병자의 병이 어떤 명령체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의 말 한디로 멀리 떨어져서 중풍병을 고치심으로써 사실인 것으로 입증이 된 셈이었다. 백부장은 중풍병이 단지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육체적 작용만이 아니라 즉 예수님과 무관한 별도의 독립된 체계 속에서 나름대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통전적인 관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예수님을 아주 높은 존재로 여기셨다. 백부장 정도면 사실 그 집이 예수님을 모실만했을 것이다. 세리의 집에도 들어가시는 예수님이신데. 그러나 백부장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요즈음에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말하며 하나님의 침소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아주 필요한 관점이다. 그러나 이 백부장과 같이 예수님을 향한 근본적인 경외심 없이 예수님과의 친밀감을 말하면 마치 뭘 모르는 아이들이 예수님의 침소를 소중한 줄 모르고 마구 드나들고 침대 위에서 예수님은 아랑곳 않고  마구 뛰어노는 것과 뭐가 다를까?  다섯째,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을 정말 사랑했음에 틀림이 없다. 예수님께로 하인의 중풍병 문제를 들고 나간 것 자체가 애정없이는 안되는 일이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다 실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었다. 호기심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고 자기 과시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하인에 대한 순수한 애정 속에서 백부장은 예수님께로 나갔던 것이다. 

도대체 백부장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오늘날 정보과 형사처럼 그 지역의 새로운 뉴스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꾸준히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도 갈증도 컸을 것이다.  하인들과도 상당히 인격적 관계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름, "이 분은 다윗의 자손 메시야임에 틀림없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을 것이다.

 

변화:백부장과 같은 특별한 그리고 아주 큰 믿음을 갖자! 예수님도 놀라실만한!

 

-->아이들의 건강과 young2080의 사이버 사역에 필요한 재정모금에 있어 이 백부장의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액션하자.

Posted by 고직한

어제 홍목사님을 찾아 뵙고 아주 중요한 문제를 상의하였다. 그의 존경스러운 인테그리티와 분명한 가치판단과 윤리의식, 특별히 그의 목자로서의 태도가 무척 감명 깊었다. 그리고 말한만큼 행동하고 실천하는 그의 모습 또한 큰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눈물로써 기도하는 그의 주님 사랑과 교회 사랑은 내 매마른 심령도 촉촉히 적셔 주었다. 내게 이런 멘토가 있어 너무 감사하다! 그가 1991년 8월 내가 아주 어려웠던 시절, 나를 지지해주고 전폭적으로 도와주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감사드린다.

Posted by 고직한

본문:마7:1-12

 

도전: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찾아내어 뽑는 일을 가장 먼저 하자.

 

상황:들보란 집을 짓는데 있어서 가장 길고 큰 재목을 말하고, 티는 들보에서 어쩌다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이나 먼지를 말한다. 예수님은 바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자기 만족이나 자기의에 빠져서 그렇지 정작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못느끼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 자신을 하나님의 현미경으로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내 눈으로만 보니 내 몸의 수억의 대장균을 못보고 들보와 같은 진득이의 애벌레들이 득실한 것을 못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현미경으로 보면 내 눈 속에 엄청난 들보들이 있는 것이다. 이 들보들을 찾아내어야 한다. 이 말은 내가 먼저 하나님의 심판권 밑에 서있어야 함을 말한다. 현미경을 들고 계신 심판자 앞에 내가 서야한다. 아마 하나님의 현미경 역할을 하는 존재는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다. 나의 가족들, 특히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직원들과 동료들 그리고 친구들은 나의 들보들을 알고 있다. 내가 그들로 하여금 내 들보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서 그들이 말을 안할 뿐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보아도 나에겐 엄청난 들보들이 있다. 나만이 알고 있는 내 성향들과 기질들 그리고 욕망들, 그런 것들이 교묘하게 작용하여 완전범죄를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도한다. 그리고 감춰진 죄로 물든 신념들 속에서 자행되는 문제들----아 내겐 얼마나 숱한 들보들이 있는가!

 

변화: 하나님의 현미경(말씀과 성령, 가족과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나의 양심) 에 비춰 내 눈 속의 들보들을 보게되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 그것들을 씻어내야 한다. 

 

-->정**목사와 같이 내 안의 억만 죄를 보고 토로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 후 부어주시는 성령을 체험하고 싶다!

 

Posted by 고직한

어제도 말하고 나간 시간보다 아주 늦게 들어와서 아내의 마음을 아주 불편케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아내가 출근하기 전 정성껏 차려준 아침 식사를 함께 해야하는데 누군가와 중대 전화를 한다고 30분 기다리게 했더니 아내가  드디어 거센 꾸지람을 내게 날렸다. 이따금 이런 꾸지람을 들어야 나는 뭐가 소중한 것인지를 비로서 알게된다. 가끔 꾸지람을 날리는 아내가 있어 고맙다!

Posted by 고직한

본문:마6:19-34

 

도전: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않고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상황: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의식주 문제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근심걱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일차적이며 궁극적인 관심이 땅이 아닌 하늘에 있어야 한다. 사실상 땅에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좀,동록과 도둑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무척 피곤한 일일 뿐 아니라 경비 또한 엄청 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둔다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보물을 어떻게 하는가? 나의 보루은 과연 무엇인가? 나의 시간과 육체적인 노력이 재화를 나을 수 있으니 우선 그런 것들이 나의 보물이다. 나의 중보기도 역시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이라면 역시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들고나가는 것 자체도 보물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벌거나 일을킬 수 있는 재물이 보물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보물들을 기꺼히 하늘에 쌓고자 하는가?

설령 내가 저축을 한다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한다하여도 정말 그 궁극적인 동기와 목적이 내가 그 모든 것들을 하늘에 쌓아 두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가?

 

변화:지금까지 내가 나름 먼저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약속대로 의식주 문제 걱정없이해결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의 노후 역시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을 믿으며 돈 문제로 얽힌 추한 노후가 되지 않도록 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자.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사업과 프로젝트들에 임함에 있어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자. 이게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Posted by 고직한

어제 오후 청뜰 운영이사회가 새롭게 구성되고 출발하였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 간 청년들에게 멘토링하기 위해서 이모저모로 관계맺고 모여온 각 분야의 전문인들이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약 30명 정도의 운영이사회를 구성하게된 것이다. 다음 세대를 걱정하며 뭔가 큰 형이나 누나, 삼촌과 이모가 되려는 좋은 분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 하나님, 이 모임과 구성원들과 그들의 관계 및 사역 위에 기름부어주소서!  

Posted by 고직한

본문:마6:5-18

 

도전: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

 

상황:외식하는 자들의 문제는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을 더 의식하는 데 있다.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이 없는 은밀한 곳에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보다는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한다. 그리고 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기를 마치 내가 뭔가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행동주의 실적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인격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모르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심지어 금식할 때조차 마치 전혀 금식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꾸미라고' 가르치신다. 위선이 아닌 '위악'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말은 사람들이 내가 금식하고 있는 것을 인지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라는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만 의식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바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도 외식하는 자의 범주에 있다. 어느 사이에 나도 오랜 신앙생활, 교회생활,사역자 생활을 해오면서 어느 사이에 내 안에 외식하는 자의 모습이 생겼고 그것이 두터워졌음을 느낀다. 어찌할꼬?

 

변화:나는 합심기도를 믿는다. 그러나 합심기도를 이끄는 시간과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와 교제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1:10의 비율로 하자. 내가 합심기도를 이끄는 시간은 아주 작은 빙산의 일각이고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은 빙산 밑의 밑둥처럼  훨씬 커야 한다.

 

-->외식과 위선의 기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사람 만나는 절대시간을 줄이고 하나님 앞에서 '은둔생활'의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자. 

Posted by 고직한

어제까지 삼일 간 young2080 leadership plus camp를 잘 마쳤다. 캠프 기간 중 다시 내가 앞으로 주력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내게 알려주시는 것이 있어 감사드린다. 이제 나는 더 확신있게 청년사역자들을 일깨우고 구비시키고 일으키는 일을 내 모든 것 총망라하여 해야한다는 나의 새결심에 하나님께서 새로히 축복해주셔서 감사한다.

Posted by 고직한

마5:21-37

 

도전:살인,간음,맹세에 관한 예수님의 율법 재해석에 비추어 나는 완전 지옥불에 들어갈 자이다.

 

상황:존재론적으로 나는 바리새인과서기관의 계열에 있다. 20절에서 예수님은 내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예수님의 아주 높은 기준에 비추어 완전히 박살내버리신다.그렇다면 내 의라는 것도 예수님 앞에선 설 자리가 없다.나는 완전 지옥불에 들어갈 자이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주 예수시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 외에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래서 주의 자비를 입고 내가 예수님의 표준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시도와 노력하는 것 외에 있을까? 이를 위해 내게 성령주시고 성경주시고 성도들을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변화:주님 저는 살인자이며 간음자이고 거짓 맹세하는 자입니다. 주님 저야말로 지옥불에 들어가기 마땅한 자입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소서!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 출퇴근 시 차 안에서 하림이가 작곡작사한 예수기도의 '미러클 송'을 계속 따라 부르면서 예수기도를 수백번 하나님께 올려드리자. 마치 눅18:13의 세리처럼 기도하자. 

Posted by 고직한

어제 가족수련회를 안성수양관에서 하다가 김영순사모님을 뵙게되었다. 마침 옥목사님의 묘에 가서 기도하러 가려고 할 때 뵙게된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사모님께서 당신의 방에 가자고 하셔서 우리 가족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가서 사모님의 옛날 얘기를 들으며 맘껏 웃고 또 찬양을 하자고 하셔서 찬송을 은혜롭게 할 수 있었다. 하영,하림 두 녀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시는 사모님께 정말 감사치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우리 가족수련회의 주강사는 자연스럽게 김영순사모님이 되신 것이다!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