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5:21-27

 

도전:공의가 빠진 예배만능주의의 문제점

 

상황: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와 성회들과 여러 종류의 제사들과 찬양들을 돌아보지 않겠다 하신다. 오히려 열방의 왕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볼모로 끌려가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유는 공의와 정의가 빠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정의로운 삶을 다 원하신다. 그러나 예배자의 정의로운 삶이 빠진 예배를 역겨워 하신다. 물론 예배가 없이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에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자기 의가 가득하고 자기 교만으로 가득한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복음주의 크리스찬들의 경우, 은사주의 크리스찬들은 더 그렇고, 예배를 무척 강조한다. 거의 예배만능주의라고나할까? 그러나 아무리 뜨거운 예배라 할지라도 예배인도자와 예배자에게 공의와 정의에 대한 각성과 분발이 일어나지 않고 예배를 인도하고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실 뿐 아니라 분노하신다. 이런 종교적인 예배와 성경적인 예배의 근본적 차이를 아는 것이 아주 필요하다.

 

변화:나의 영성과 예배는 공의와 정의를 진작시키는지 돌아 보자

 

-->큐티진에 매월 실는 QT CLINIC에 이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쓰도록 하자.

 

Posted by 고직한

가드너의 다중지능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무척 중요해졌다. .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논리-수학적 지능, 언어지능,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자기성찰지능,자연친화지능 8가지이다. 근래에 이 모든 지능을 활성화시켜주고 방향을 주는 영성지능이 조명을 받고있어 감사하다. 그런데 이 모든 지능이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기성찰기능이라고 한다. 매일같이 크리스찬이 하는 자기성찰기능의 장은 QT이다. QT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령의 지도를 받으며 하게되는 가장 탁월한 자기성찰의 시간이다. 이 점에 있어 35년 간 QT를 강조하고 QT목회와 QT운동을 해오고 있는 나로선 QT의 큰유익을 다중지능의 관점에서 새롭게 컨펌받게되어 아주 감사했다.

Posted by 고직한

암5;14-20

 

도전:정의가 없는 삶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거부하신다.

 

상황:예배자가 전혀 정의롭지 못하고 공의롭지도 못하면서 온갖 종교행위들을 한다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역겨워 하신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뱉으시고 내치신다. 그 종교행위의 본질인 우상숭배의 그 우상으로 인해 배반 당하고 망신 당하게 된다.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다. 예배와 영성을 아주 강조하고 최우선시하나, 예배자나 예배인도자 개개인의 윤리도덕적 삶에 정의와 공의가 결여되어 있고 공공신학적 관점 역시 거의 없다싶이 하다. 그 가운데 온갖 성회와 집회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윤리성과 사회성으로 나타나지 않는 영성은 여타 종교의 영성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내가 한국교회를 말하기 전에 나와 나의 사역을 돌아보자.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적으로 문제될만한 것은 없는가? 

 

변화:하나님 앞에 철두철미하게 나를 살피고 끊임없이 주의 보혈을 의지하여 씻어내고 '정직과 감사의 열매'를 아주 풍성하게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랑의교회에서 6년째 하고 있는  정감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자. 이번 주 새벽의 정감새벽나무에서의 설교와 기도회 인도를 영성과 윤리성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섬기자.    

Posted by 고직한

체인지매이커플랫폼에 오는 청년 멘티 네명과 김휘중간사와 함께 한시간 남짓 PRAYER WALK 곧 기도산책을 하였다.아뜰리쉬에서 출발하여 계원예대의 뒷 뜰에서 성부 하나님을 묵상하기 시작하여 옛골 공원에서 성자 예수님 묵상하며 터널 위를 기도산책 하였다. 가파른 계단이 제법 길게 있어 그걸 예수님 묵상하며 걸어올라가니 웬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길 올라가시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숲 속에 들어가서성령 하나님을  묵상할 때 느껴지는 강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 멀리 백운호수를 바라본 후 벤치에 둘러 앉아 함께 기도하였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Posted by 고직한

얼마 있으면 결혼주례할 예비신랑신부를 만났다. 함께 결혼예배 순서를 의논했고 T-JTA성격검사와 관련해 얘기하였다. 젊고 유망한 카플을 보니 그 젊음이, 그 사랑이 부러웠다. 두 사람을 보며 항상 해맑은 청년들이란 인상을 가져왔는데, 오늘도 그런 인상을 갖고 헤어졌다. 그런 형제자매들의 결혼 주례를 하는 것은 내게도 힘이 솟고 신이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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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직한

암5:14-20

 

도전:어떤 크리스찬에게는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로 돌변할 수 있다.

 

상황:사람이 간신히 사자를 피해 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느닷없이 곰을 만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겠는가? 또는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다 대었는데 뱀에게 물리는 상황은 어떤가? 정말 질겁할 일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는 없고 여전히 악을 행하면서도 신앙유사행위 속에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로 생각했다가 사실상 심판의 날로 나타나는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다. 엄청난 착각이 빚어내는 비극이다. 희망의 반전이 아니라 절망적 반전이다.

오늘날 구원의 확신이란 것도 이렇지는 않을지? 부분적,단편적 교리에 의존해서 예수님 믿으니 구원받고 영생을 얻으니 이제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경우가 그럴 수 있다. 분명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반드시 가치관의 변화의 행위의 변화와 삶의 내용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 검증가능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구원의  열매가 맺힘없이 단지 교리에만 기초하여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것은 나중에 구원의 날일줄 알고 잔뜩 기대하였다가 심판의 날로 돌변하게될 때 놀라자빠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종교행위를 성경적 신앙행위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구원의 확신이란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일 수 있다. 성경적 신앙행위는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라든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변화:내 삶에 있어 최선을 다해 선을 구하고 악을 미워하자.

 

-->현재 준비 중인 '감사나눔우체국'을 사랑의교회 마당에 만들어 운영하는 일을 기도하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하자.

 

Posted by 고직한

하림이가 건강이 많이 회복되고 있어 너무 감사하다. 이젠 교회에서 드러머로 정기적으로 섬기는 일도 가능해졌고 인컴소스를 만들기 위해 '드럼잉글리쉬'를 다시 가르치는 일도 가능해졌다. 아이들에게 드럼과 타악기를 가르치면서 영어 챈트나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했을 때 반응이 무척 좋았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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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직한

암5:1-13

 

도전:"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상황: 이스라엘은 온갖 불의가 판을 쳐서 정의가 쓴 쑥과 같이 바뀌었고 공의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것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런 때에 지혜자는 잠잠할 수 밖에 없다. 괜히 뭔가 정직을 말했다가 개선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자가 봉변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멸하시고 약 십분지 일 정도만 남기겠다고 예고하신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살 길의 희망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데서만 나타난다. 이것은  정말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언제 하나님을 찾는다 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항상 입으로는 모양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였으나 행동으로는 철저히 하나님을 배교한 자로서 살았던 것이다. 성소를 찾았으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유사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유사행위였다는 것은 그들이 공의를 뒤집고 정직을 핍박하고 이웃을 말아먹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유사품 주의!" 이 말은 "신앙 유사품 주의!"라는 말로 적용될 수 있다. 유사품은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유사품은 사람의 눈을 속이되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만 그런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유사품은 드러날 수 밖에 없으면 색이 바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에게도 많은 유사행위가 있다.   꾸며진 모습이 많다. 위선이 많다. 이것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진정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그 길이 내게도 살 길인 것이다.

 

변화:내가 진정 하나님을 찾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실 나에게 있는 신앙 유사품을 찾아내자. 그리고 벗어 던지자.

 

-->이번에 '크리스마스 스토리' 행사에 있어 유사행위는 걷어내고 오직 예수님께 '생신 상'을 차려드리는 마음만이 나타날 수 있는 것만 살려내도록 힘쓰자!

Posted by 고직한

 이상하다. 나도 최근에 그 사람을 보고 싶었고 뭔가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 사람에게서 일단은 자기 필요 때문에 도움 요청이 왔다. 무척 반가웠다. 오랫 동안 서로 연락없이 지내다가 근래에 갑자기 그가 떠올랐고 내가 연락하고 싶었는데 연락이 온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돕고 싶었다. 감사하기도 했다. 타이밍이란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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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직한

암4:6-13

 

도전:하나님의 절규,"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상황: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먹을 것을 없게 하고, 가뭄이 들게 하였다.물을 실컷 마시지도 못하게 하셨다. 병충해와 메뚜기로 농작물을 막치게 하셨다. 전염병 보내고 말을 빼앗으며 젊은이들을 전쟁에서 죽게끔 하셨다. 결국 그들을 무너뜨리셨다. 마치 그들은 불 속에서 타다 만 막대기 같았다. 문제는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아니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기다리셨으나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반복되는 하나님의 이 말씀,"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를 묵상하며 나 또한 얼마나 그랬으며 우리 한국교회가 얼마나 그런지 생각하며 등이 오싹해졌다.

 

변화: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기 위해서 하신 일들을 이제는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 그리고 하나님께 정말 죄송했다고 말씀드리자.

 

-->새찬송가 525장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오라"를  오늘 차 안에서 운전 할 때 열번 부르며 소리내어 기도하자.(눈뜨고!)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