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중이신 83세 고령의 어머님께 어제 저녁 찾아뵙고 기도를 해드렸다. 늘 깔끔하시고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시려는 그 마음으로 거의 완전무장되어 있는듯한 어머님의 모습은 그 중병에도 불구하고 여전하시다. 내가 근래에 쓴 책을 틈틈이 보시나 보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느끼시고 기도 또한 하시는 것 같다. 내가 어머님 손 꼭 붙잡고 그리고 어머님 이마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어머님 안에서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님 안에서 일어나는 의미심장한 변화들을 보니 실로 감사한 마음 뿐이다!

Posted by 고직한

빌2:1-11

 

도전:예수 공동체의 특성과 그 근본정신

 

상황:빌립보교회에는 약간의 분열이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이러한 조짐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의 특성은 결국 한마디로 경천애인인 것을 말한다. 바울식 표현으론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고 그 마음을 품은 자들은 한 마음 즉 같은 마음, 같은 사랑,같은 뜻을 품고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김과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봄의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한국교회는 입술로는 예수,예수해도 사실상 예수의 마음을 품은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엄청난 분열과 반목, 불신과 정죄는 예수의 마음과는 완전 상극의 모습이다. 도대체 어떻게해야 되는 것일지? 어떻게해야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끔 할 수 있을지? 소위 말하는 교단 지도부니 교계지도자니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나 이른바 괜찮다고 하는 담임목사들의 연합의 모습이나 대부분이 결코 예수의 마음을 품고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양상의 핵심은 악화가 양화를구축하는 일이다. 또한 그렇게 되는 근본적 이유는 예수의 마음을 품은 자들이 교계의 지도자들이 되지 않고(이들은 자기 목회에만 너무 바쁘고-- 자기 일만 돌아보고 남의 일은 돌아보지 않기 때문) 소위 교계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자기 일은 돌아보지 않고 한가한 사람들로 이른바 현장에서 예수의 마음을 품은 지도자로 검증이 안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이래저래 상층부로 갈 수록 무자격자들로 한국교회와 교계의 대표성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주높다. 이것이 한기총의 본질적인 모습이고  교단 노회나 총회의 모습이다. 즉 일해야할 사람은 안하고 있고, 하지말아야할 사람은 설쳐대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로선 진실한 중보기도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예수원의 벤토리신부가 고민하는 한국교회의 진정한 하나됨도 바로 이런 고민이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중보기도에 힘쓴다.  

 

변화:나 자신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내가 책임있는 공동체에서만이라도 그리고 다음 세대를 일으키는 그 일 가운데에서만이라도 바로 이 경천애인의 본질과 특징이 나타나도록 기도하고 힘쓰자!

 

→: 그렇다! young2080리더쉽과 r&d,e팀 안에서, 멘토링코리아 준비팀,느티나무, 정감운동 팀, 클래팜기도회 안에서 내가 먼저 예수의 마음을 품고 실천하며 중보기도하자.

Posted by 고직한

배종수교수님을 아내와 함께 만났다. 서울교대에서 초등학교 수학교육을 가르치고 계시고 우리나라 초등과정의 수학교과서 편찬위원장도 하신 분이시다. 특별히 그 분의 수학교육 방식은 '생명을 살리는 삐에로 수학'이라 하여 유명하다. 배교수님께서 이제 내년 한 학기만 지나면 정년 퇴임하신다고 한다. 은퇴 후의 계획을 물으니 어쩌면 지금까지 평생 그 일만을 위해 준비해온 것같이 대단한 의욕으로 오히려 은퇴를 기다렸다는듯이 아주 감동적이고 마음 설레게하는 계획을 말해 준다. 이른바 '특별학교'를 만들어 내년부터 인성과 실력을  갖춘 인물을 어려서부터 훈련시켜 배출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배교수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감사편지쓰기운동을 전개해왔다. 이 분을 만나면 감사의 바이러스가 감염된다. 이 분은 아이들에게 감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인생에 득이 되는 것임을 아주 수학적으로납득시켜서 아이들이 의지적으로라도 감사편지를 쓰다보면 그 맛과 유익을 잊지못하고 체질화되도록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의 좋은 인성을 쌓게끔하고 생명이 살아나고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경험케 한다.  

Posted by 고직한


빌1:12-30

 

도전:바울이 투옥 중에도 기뻐하며 살 수 있었던 이유와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상황:바울은 오직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다면 그 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면 그것을 기뻐하였다. 또한 바울이 섬기는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한 길을 갔다. 바울의 이러한 가치관의 핵심기둥듣로 인해서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근래 83세 노모의 부상과 대수술과 입원 중 새로히 예측되는 대장암의 가능성 때문에 무척 우울하였다. 그리고 다른 몇가지 상황들은 내가 더욱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내 삶과 사역이 무척 버겁게 느껴지고 있다.  이러한 때 내가 바울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그 가치관이 어떠한 변화를 주는 것일까? 평생 투철한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해서 살아오시고 젊은 시절 버트란트 러셀의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고 불가지론자의 길을 택하며 오신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복음을 향해 마음을 여시고 신앙고백도 하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좀 더 복음의 깊이와 능력을 좀 더 맛보게 하고 싶었으나 사실 기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어머님의 현재 입원 상황은 어머니에게 복음 전파하기에 그리고 어머님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아주 좋은 기회인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침울해질 이유가 어디 있는 것일까?  또한 우울해질 상황에서 오히려 이런 열린 기회로 인해 기뻐함으로써 특별히 어머님과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볼 때에 그리스도를 더욱 존귀케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해야할 길이 아닐까?

 

변화:어머님의 입원 중 상황을 바울의 가치관적 관점에서 바라보자.

 

→: 아무리 바빠도 어머님께 좀 더 자주 가서 어머님을 위로해드리며 말씀도 나누고 기도도 많이 해드리자.

 

Posted by 고직한

도처에 훌룽한 사람들이 있구나를 느낀다.

임정택이라는 청년 사업가와 통화했다. 한동대를 나와 포항에서 HIS BEANS라는 커피하우스를 다섯개째 내었다. 앞으로 계속 그 커피하우스는 늘어날 것이다. 이 사업의 성공과 확장도 귀한 것이지만 이 형제의 뜻과 노력이 너무 귀했다.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의 병력이 있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바리스타교육 및 여타 훈련을 아주 잘 시키고 그들이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여건을 만들어서 그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되는 청년 사회적 기업가와 통화하면서 그의 청년스피릿과 기업가정신을 느끼게되어 참 감사했다. 

Posted by 고직한


빌1:1-11

 

도전: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의 애정은 마게도냐 환상으로 인해 빌립보로 가게되어서 개척된 교회라는 점과 옥중에서 낳은 성도들이 있었다는 상황과 반드시 연결되어 생각되어야 한다. 

 

상황:빌립보교회는 그야말로 100%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진 교회이다. 원래 아시아 지역을 향하려던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선 내려놓게 하셨고 바울의 선교팀을 마게도냐 환상을 통해 급전환시켜 빌립보로 가게 하셨다. 거기서 만나게된 기도하는 루디아와 그 일행등을 만나 교회가 이루어졌다. 바울은 그야말로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느꼈을 것이고 이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그런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신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늘미 맺어준 관계라는 생각이 깊었을 것이고 루디아와 같이 비지네스 우먼 및 함께하는 여성들은 바울에게 좀 더 감성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 후 빌립보의 감옥에 갇히는 일, 거기서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서 간수장과 가족의 개종과 성령의 기름부으시는 오순절적 사건 등 빌리보교회의 또 한 축을 이루게되는 사람들과는 특이한 인연으로(옥중에서 낳은 교회) 사역을 하게된 것이다. 이런 빌립보교회의 개척사를 보면 바울과 그 핵심멤버들의 관계는 아주 절친한 관계였을 것이다. 사실 이런 개척과정에 형성된 소중한 관계들! 바울은 이들을 무척 사랑하였고 이들을 위해 깊은 중보의 시간들을 가졌으며 이들에게 서신을 띠웠다.

 

변화:나의 중보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나의 관심과 사랑은 어느 정도인가?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어떻게 하며 어떤 A.S.를 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좀 더 나의 중보리스트를 업데이트시키고 바울과 같은 마음과 태도, 그리고 구체적인 A.S.컨텐츠를 갖고 그들을 향해 수평적인 목회를 하자.  

Posted by 고직한

어제 밤 집 근처에 있는 아내의 일터인 영어유치원 아뜰리쉬에 가서 다락방에 올라가 아내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기도의 처소를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동역자가 있어 난 정말 행복하다. 물론 우리 가정이 돌파해야할 문제들 만만치 않다. 그리고 함께 사역과 관련한 과제들도 쉬운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정말 가장 강력한 기도의 처소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가 있어 좌절하지 않는다. 감사뿐이다!

Posted by 고직한


롬16:21-27

 

도전: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고자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신비로 복음을 감춰두신 이유

 

상황: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다. 왜 하나님은 신비 속에 그렇게 하신 것일까? 또한 아주 장기간 감춰두고 계시다가 이젠 완전히 공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관되게 비전의 비밀 메시지로 극소수의 사람들만 듣고 구원받게 하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27절 초두에서처럼 '지혜로우신 하나님'이란 말에서 그 답을 헤아려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의 지혜! 나도 누구도 미칠 수 없는 지혜이다. 그 지혜 속에 하나님께선 그렇게 하셨다. 조금이라도 헤아려보면 얼핏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두신 하나님께서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성품과 방식에 맞게 구원하시기 위한 완벽한 수단이 그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의 세상에서도 복음은 불신자들에겐 거의 신비 속에 감춰진 보물이다. 이미 복음이 웬만한 곳이면 다 공개되었으나 다 그 복음을 알아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마치 열린 것과 같다. 이 신비의 계시가 내게 허락된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 복음은 정말 신비롭게 나에게 도달되었고 하나님은 내 눈의 베일을 거두시고 그 비밀을 알게 하셨다.  

 

변화:신비의 계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감사가 내게서 흘러넘쳐 나 또한 누군가 그 계시를 접해 구원에 이르게되는 자들이 나오게 하자.

 

→: 아뜰리쉬의 교사 중 불신자 등 내 주변에 불신자들에게 이 신비의 계시를 알려줄 수 있는 관계와 기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맺자. 아뜰리쉬 교사들과 특별히 월 1회 스낵파티를 갖자! 

Posted by 고직한

롬16:17-20

 

도전:그리스도를 섬기는가? 아니면 자기 배를 섬기는가?

 

상황:참된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은 사실상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자들이다. 바울은 이들을 살피라고 하며 이들에게서 떠나라고 한다. 우선 누가 그런 것인지 잘 분별해야하는 것이고 일단 그렇다고 판단이 서면 이들과 시시비비 가리려 말고 떠나라는 것이다. 어짜피 그들의 분쟁프레임에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활한 말로 때로는 아첨하는 말로 성도들을 미혹해서 파당짓는 일을 할 것이다. 사실상 한국교회의 수많은 분파는 바로 이런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자들을 조심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종종 교회의 담임목사들이 사실상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자로 보일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만약에 그런 담임목사의 거짓과 비리를 어떤 성도들이 알게되었을 경우, 만약 문제 시 한다면 오히려 문제 제기하는 성도가 거꾸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매도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경우 그 성도가 조용히 교회를 떠나야하나? 요즈음은 교회 안에서 과연 누가 자기 배만 차리는 자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성도들 간의 교제가 거의 칸막이식으로 되어 있어 투명함이 없기 때문이다. ----  이런 혼탁한 교회 속에서 건져야할 바울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우선 나 자신이 자기 배만 섬기는 자는 아닌지 냉철히 살피자. 그리스도를 섬긴다하면서 사실상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비판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는 과연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들과 같은 면에서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양심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뭔가 내 안에 감춰진 자기 욕심 속에서 겉으로 포장하여 하는 말은 아닌가? 그리고 누군가를 비교적 정당한 이유를 들어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무조건 동조만 할 것은 아니다. 똑같이 그들의 동기가 과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분별해 보아야 한다. 그들도 뛰어난 포장술로 그럴싸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심혼골수를 쪼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의 내면의 동기가 나의 욕심 채우기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께 있는 것인지 자기성찰하는 노력을 피나게 해야 한다.

 

→: ***의 교회 비판에 나는 상당히 수긍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와 나의  비판의식이 과연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욕심에서 나온 것을 미화하고 포장하고 있는 것인지 냉철히 살펴 보자. 만약 거리낌이 있다면 그와 나의 동기가 더 순화되도록 노력하고 하나님깨로 온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에 이르면 용기를 갖고 사랑 가운데 선지자적 역할을 하자.    

 

 

Posted by 고직한


롬16:1-16

 

도전:바울은 한 교회에서 장기적으로 하는 수직적인 목회가 아니라 순회하는 선교사로서  수평적인 목회를 하였다.

 

상황: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사람들의 이름만 적어도 30여명. 그리고 그들 하나 하나에 대한 묘사는 바울과 그들과의 깊은 신뢰 관계와 친밀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바울은 로마에 있지 않으면서 서신으로서 중보기도로서 또는 뵈뵈와 같이 사람을 보내기도 함으로써 로마교회의 중요 성도들을 대상으로 수평적인 목회를 한 셈이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나의 중요한 롤모델이다. 나는 이른바 한 곳에서 장기목회를 하는 담임목회자가 아니다. 나는 대학졸업 후 35년 간 젊은이사역만 하였다. 젊은이 사역의 특징은 2-3년이란 단기간에 젊은이들에게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고 그들은 모두는 어디론가 흩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청년목회자들을 오래 동안 도와 왔다. 그들 역시 부교역자 신세인지라 어디론가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바울을 보면서 흩어진 젊은이들과 청년목회자들을 상대로 나도 애정을 갖고 중보로써 서신과 같은 수단으로써 수평적인 목회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소위 내 교회 교인이 아니면 내 마음과 내 기도의 리스트에서 이름을 지워버리는 식으로 해선 안된다.   

 

변화:수평적인 목회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목회지원 시스템은 어떻게 할 것인지 보다 더 깊은 연구와 점진적인 실천.

 

→: 지금하고 있는 나의 사역 모두를 수평적인 목회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수평적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목회 대상으로 간주하며 애정과 중보를 심어야 한다.

 

Posted by 고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