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2:1-13

 

도전:1-2절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림과 뜻 분별의 명령은 3-13절의 공동체 안에서의 body life와 연결지어 생각해야 한다.

 

상황:이 본문에는 두 종류의 몸이 나온다. 하나는 1절의 '너희 몸'이라할 때의 성도 개개인의 몸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13절의 그리스도의 몸, 즉 기독공동체 또는 교회를 가르친다. 사실인즉 내 몸이란 것도 반드시 내가 속한 몸 곧 공동체 안에 달라 붙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며 제대로 역동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몸을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려면,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잘 분별하려면 나는 공동체 안에서 지체의식을 갖고 다른 지체들과 연락과 상합의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내 은사를 발휘하고 다른 지체들의 은사 발휘의 혜택을 입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가르치는 은사가 있다면 그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내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보다 더 잘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내게 주어진 소중한 관계들을 몸과 지체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자. 그저 언제 내가 이용할 목적의  소셜한 관계로 바라보고 대해서는 결코 안된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몸의 관계가 되도록 힘쓰자.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young2080 식구들과 생생플랫폼,정감운동,윌버포스기도회,느티나무모임 멤버들과 깨끗한 마음속에서 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맺자.  그것이 내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첩경이다 !

 

   

Posted by 고직한

 

롬11:25-36

 

도전: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심'

 

상황:그 누구도 자신의 불순종과 그 결과로 인한 책임을 면책받을 수는 없다. 이것이 성경적 가르침이다. 그러나 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날고 떨어지고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누군가의 불순종도 하나님의 신비로운 주권적 통치 하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누군가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발견되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할 이유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호주에 있는 나의 두 동생과 그들 가족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심'을 풀어 주셔야만 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변화:불순종하는 자들의 자기결정과 자기책임 보다 상위개념인 '하나님의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심'의 파워를 내가 겸손하게 인정하자. 그럼으로써 사람의 모습과 반응에 내가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상대로 더욱 기도하며 하나님의 풀어주심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고 바라보는 자세와 노력을 가져야 한다.

 

→: 두 동생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모습에 내가 결코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의 가두어 두시는 파워와 그 반 면에 풀어 내시는 파워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담판짓는 기도를 더 힘써 드리자!

 

 

 

Posted by 고직한
큐티클리닉/QTzine2012. 9. 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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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직한

로마서 5:1-11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도전: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단계가 있다. 입문 단계에서부터 더 깊은 심층적 단계.

 

상황:"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2절,표준새번역)--->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단계(은혜의 자리)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단계가 있다.

그리고 ,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10절,표준새번역)----->하나님의 원수이었을  때->하나님과 화해(아들의 죽으심으로)->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 단계.(성화적 차원의 구원인가 영화적 차원의 구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해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할 계획을 갖고 계신다. 또는 칭의적 구원을 넘어 성화와 영화라는 단계의 구원을 기대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지속적 성장을 원하신다. 이른바 영적으로 등업을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신앙의 등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현 단계를 일단 완벽히 마스터 해야한다.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등업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마치 피아노 치는 학생이 그런 것처럼.또는 천로역정 속의 여러 단계처럼.  성경 속의 계시를 통해 더 깊어지는 단계를  알아보고 기도 속에서 성령의 인도로 깊이있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절대 안주해서는 안된다. 내가 더 깊이 그리고 명확히 알아야할 주제들이 있다. 이른바 종말론을 비롯하여 아가서에 대한 이해, 두나미스 성령사역에 대한 이해와 체험 등 --  

 

변화:학구열과 성장욕구는 갖되 과한 욕심부리지 말고 한 단계, 한 단계를 제대로 완벽히 마스터해야 한다. 좀 더 리서치와 묵상과 기도(prayxis paradigm, pray+praxis) 중심의 삶을 살면서 그 다음 단계로 인도받아야 한다.

 

포인트: 영적 등업을 끊임없이 시도하라!

Posted by 고직한

과연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나는 가족들에게 쉽게 짜증내고 아내에게 가끔 화를 내는 내 모습을 잘 고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내 인격의 변화에 신앙이 진보는커녕 답보 또는 퇴보에까지 이르게 하기도 한다고 단정하고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앙의 효과를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다. 분명 힘과 격려와 소망을 주는 유익한 점이 많지만, 성화라는 관점에서 나를 냉철히 살펴볼 때 상당히 비관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뇌 속의 생명나무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런 사고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근 10년 사이에 과학사에 있어서 아주 현격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뇌과학의 발전 이야기를 접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5년 이상 뇌과학을 연구해온 캐롤라인 리프 박사(Dr. Caroline Leaf, 인터넷을 통해 리프 박사의 간증을 볼 수 있으며, drleaf.com에서 관련 자료들을 읽을 수 있다.)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몸과 인격 및 삶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뇌에는 약 1천억 개의 뇌세포가 있고, 각 세포는 최대 20만 개의 가지를 칠 수 있는데, 이는 3억 년이 넘는 기간의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뇌는 오감을 통해 뇌에 들어온 것을 가지고 초당 4천억 회 연산을 하는데 이것은 결국 생각으로 변환된다. 그리고 뇌에 나무처럼 모양을 갖추는데, 과학자들은 이것을 마술나무 숲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생각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생명력이 넘치는 녹색나무가 될 수도 있고, 독성이 있는 잿빛나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면 뇌에서 무려 1,400개의 화학물질과 30개의 호르몬이 분비되어 나무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부정적이면 100개의 화학물질이 역기능을 일으켜 뇌 속에서 화학적 혼돈을 일으키고, 잿빛나무가 형성되어 뇌에 염증이 생기는데, 이는 87-95% 질병을 일으키는 근원적 요인이 된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사랑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졌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뇌세포 나무를 3주면 바꿀 수 있고, 유전자까지도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뇌세포가 신경가소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생각이 유전자 단계로 가는 전기의 흐름을 만들어 좋은 유전자를 생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란 잠언 말씀(23:7)은 아주 과학적인 말씀이다!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은 우리의 말과 생각을 관찰하고, 그 모습을 한 발 물러나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만약 이 전두엽을 이용해 나쁜 생각 대신 만물이 존재하게 하고 우리의 심혼골수를 쪼개며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성화로 이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리고 단순한 묵상을 넘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는 임재적 묵상을 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 뇌에선 도파민, 옥시토닌, 세레토닌이 나와 잿빛나무를 녹이고 생명을 몰고 오는 녹색나무가 자랄 것이다. 세상은 사람이 늙으면 마음도 느려지고 기억도 흐려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면 그 정반대가 가능하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또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기도와 찬양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전두엽이 두터워진다는 것도 밝혀졌다.


큐티가 무엇인가? 큐티를 통해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의 작용을 통해 우리의 뇌에 심어 녹색나무를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자라게 할 수 있다. 이 녹색나무가 뇌 안에 가득한 큐티맨이야말로 실로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 '시냇가에 심은 나무', '의인의 길'과 같게 될 것이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곧 큐티맨이야말로 뇌 속에 녹색나무를 아름답게 자라게 만드는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다.

Posted by 고직한